일요일 오후 네 시

2020-07-01     함성호 시인

일요일 오후 네 시

- 이성미

찻물이 끓는점에서 와글와글 떠들다가, 느린 속도로 차가워지고.

끝없이 울리던 전화벨 소리가 툭 잘려 나가고.

멀리서 손목 하나가 힘없이 전화기를 내려놓고.

아이는 까만 눈물을 닦으며, 비어있는 엄마 손을 잡고.

내일의 바람이 목덜미에 닿은 듯해 흠칫 놀라니, 일요일 오후 네 시에.

오늘의 문짝에 바싹 귀를 붙이고 있는, 내일 아침의 공기들.

문이 열리면 쏟아져 들어오겠지.

지금 문짝은 오로지 팽팽하게 버티는 데 몰두해 있고.

완성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자기를 지키기 위해 흩어지고.

우리는 뜨거워지기 위해 더 뜨거워지기 위해, 찬물을 뿌려 시작점을 영도로 낮추지.

저녁을 먹을 때 어떤 사람이 말했지만.

어머, 오늘은 금요일인걸요!

 

- 이성미 시집 「칠 일이 지나고 오늘」
  문학과지성사 / 2013년

누구에게나 친숙한 시간이 있다. 오래 잠을 못 이루는 사람에게는 “새벽 세 시의 냉장고―진이정”가 있을 것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오후 만 있던 일요일―들국화”의 어떤 시간들이 있을 것이다. 친숙하지 않더라도 그것이 신호가 되는 시간도 있을 것이다. 월요일 출근해야 하는 이들에겐 주말 연속극의 엔딩 음악이, 학교가기 싫은 아이들에겐 저주 같은 일요일의 어떤 시간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그 시간이 유예 된다면? 처음엔 기쁘다가 다시 그 시간을 되풀이 해야 하는 울고 싶은 마음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