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타너스

2009-05-16     장양순 건축사

학창시절의 모교 운동장하면, 대부분 사람들은 아름드리 플라타너스나무를 연상하게 된다. 또한 60대 이상이라면 국도변에 미루나무를 대신하여 플라타너스를 심은 추억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단풍이 아름답지는 못하나 풍성하기에 낙엽 밟는 낭만도 있고, 열매는 친구들에게 던져도 싸우지 않을 만큼 적당했다. 여름철 소나기 정도는 피할 만큼 넉넉한 이파리는 엄마의 품속 같고 여남은 명이 둘러앉아도 그늘 속은 시원 했다.

플라타너스는 수세가 강하고 이식이 잘되며 성장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가로수나 공원수로 쓰이고 있으며, 그 키는 30-50미터까지 자란다. 표피는 흰색, 회색, 녹색, 노란색 등이 어울려 마치 추상화를 보는 듯하고 해병대의 겨울철 위장복을 연상하게 한다.

김현승 시인은 반세기도 전에 플라타너스를 노래했다.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 / 플라타너스 / 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 있다. // 너는 사모할 줄을 모르나 / 플라타너스 / 너는 네게 있는 것으로 그늘을 늘인다. // 먼 길에 올 제 / 호올로 되어 외로울 제 / 플라타너스 / 너는 그 길을 나와 같이 걸었다. // 이제 너의 뿌리 깊이 / 영혼을 불어 넣고 가도 좋으련만 / 플라타너스 / 나는 너와 함께 신이 아니다! // 수고로운 우리의 길이 다하는 어느 날 / 플라타너스 / 너를 맞아 줄 검은 흙이 먼 곳에 따로이 있느냐? / 나는 오직 너를 지켜 네 이웃이 되고 싶었을 뿐 / 그 곳은 아름다운 별과 나의 사랑하는 창이 열린 길이다.

금년 5월은 온난화로 인한 기온 상승으로 신록의 계절이 아니라 녹음의 계절인 냥 그 푸르름이 더한데 유독 몸둥이만 남겨놓은 가지치기로, 가로의 플라타너스만 겨울을 못 벗어나고 있다. 공무원들의 무지와 무관심 그리고 이익만 추구하는 가지치기 용역 회사의 경영자와 양심을 파는 조경기술자의 합작품이 빚어 낸 한국의 비극이다.

조조는 베지 말라는 배나무를 벤 후 화타를 동원했으나 죽었고, 소실된 남대문 복원 목재를 벨 떼도 고사부터 지냈다. 겨울방학 숙제로 양파 두 개를 다른 유리병에 넣고 한쪽은 칭찬하고 또 한쪽은 미워하면, 뿌리와 잎의 성장 속도가 현격히 차이나는 것을 우리는 실증을 통해 알고 있다. 공무원들은 플라타너스의 고통과 원망을 듣지 못하는가? 세금 내는 시민과 저탄소 녹생성장이란 금세기 화두를 무시하는 것에 울분을 느끼지만, 그보다 무릇 생명 있는 것을 홀대하는 그들에게 저주와 화가 미칠 것 같아 안쓰럽고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