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알아주는 건축사가 되는 길
아무개의 집을 설계하고 시공과정을 감독하는 일을 줄곧 해왔지만, 정작 나는 내 건물을 신축하거나 심지어 주택을 관리해 본 경험조차 없었다. 단지 어린 시절 부모님께서 만든 단독주택에 살았던 경험이 있고, 그런 부모님을 보며 건축사의 꿈을 꿔, 현재 건축사로 살게 되었다. 하지만, 나도 결국 중인지라, 내 머리를 깎기는커녕 만지지도 못하고 지금껏 남이 차린 밥상의 편리함 속에 취해 살아왔다. 그러다 한 3년째 아내와 함께 부부 건축가로 일을 하면서 직주 분리의 불편함과 출퇴근 시간의 무쓸모를 고민하던 차, 직주일치를 시험해 보기로 했다.
아무개가 아닌 내가 쓸 공간을 계획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건축설계라 함은 클라이언트와 최대한 많은 대화를 통해 제반사항과 조건 등을 공유하고 집의 콘셉트를 만들고 대안을 제시하고 협의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정해진 미팅과 시간 안에 함께 건축물을 만들어 가는 일이다. 또 몇 번의 피드백을 통해 이견을 좁히고 수렴해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 경우는 건축주가 곧 설계자다보니, 나와 이야기하고 나에게 보고하고 내가 판단해야 하는 원맨쇼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원맨쇼 속에서 고민이 되는 첫 번째는 내가 나를 탐구해 집의 콘셉트를 정하는 것이다. 건축사의 입장에서 설계를 의뢰받으면 대화를 나누며 의뢰인을 파악하고 라이프스타일을 읽어내 설계를 하게 된다. 그런데 나는 학창시절부터 타인은 탐구하는 일을 반복했을 뿐, 한 번도 나를 들여다 본 적은 없었다. 내가 나를 상당히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자 우리 사무실 콘셉트를 잡는 것이 어려웠다. 두 번째 고민은 지나치게 꼼꼼한 내 성격과 자금 사정 때문이었다. 결국 내 주머니에서 이뤄지는 일이기에 자재를 결정할 때마다 전체 공사비를 반복적으로 리뷰 하는 결정장애를 겪었다. 세 번째는 눈높이와 현실의 문제였다. 눈높이와 완성도에 대한 욕심은 높지만, 실력과 경험의 한계와 예산문제는 간극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결국 심도 있는 대화 끝에 우리가 원하는 것을 찾아냈고, 정해진 예산 안에서 설계대로 준공하고자 층별 단계별 시공을 선택했다. 살림집과 사무실은 봄-가을로 나눠 공사하고, 시공은 분야별 각각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공사하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일단 사무실 한 층을 완성했다. 나머지 살림집 부분은 가을까지 남은 숙제가 됐다. 때때로 좌절하고 때때로 보람을 느낀 이 일을 통해 클라이언트 입장을 배웠다. 아무리 의뢰인에게 최선을 다해 설계를 한다 해도, 직업인 건축사로선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번 경험을 통해 클라이언트를 이해하게 된 것이 앞으로 우리에게는 득이 될 수도,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앞으로 우리가 이 집을 만들어가고 관리해 나가는 건축주로서의 삶은 건축사로서 설계를 해 나가는 중에 분명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려줄 것이라 믿는다. 모든 건축사가 건축주가 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한 번 더 이해하고 배려하는 건축사, 마음을 읽어주는 건축사가 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