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봉의 한옥] 우리 집, 우리문화…건축사와 함께하는 한옥 짓는 이야기
중국 조선족 한옥, 전통민가 한옥의 핵심은 구들(온돌)
중국 연변과학기술대학 교수시절이다. 주말마다 학생들과 마을 답사를 하면서 저절로 민가건축연구를 했었다. 당시 열악한 환경 때문에 부족한 전공 교육과 연구를 보충하면서 병행한 것이었는데, 대학시절 대학에서는 서양건축 중심으로 수업을 했고 졸업 후에도 한국전통건축에 대한 열망은 있었지만 충분히 체계적으로 우리 전통건축을 공부할 기회가 없었던 아쉬움이 컸기 때문이었다.
중국 동북지역의 고스란히 남아있는 한옥 민가 답사를 통한 조사 연구를 하면서 우리 한옥과 구들에 입문하는 계기가 됐다. 특히 우리 민족이 많이 살고 있는 연변지방의 한옥은 고래등 같은 기와집은 별로 없지만 우리의 순박하고 순수한 황토방 초가집 형태의 민가는 정말 많다. 중국 현지의 한족(漢族)집과는 확연히 차별되는데 비록 중국의 집들보다는 규모면에서 크진 않지만 정갈하고 깔끔한 우리 전통건축 서민한옥에 금세 매료됐다. 그 전통 민간한옥 요소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이 바로 구들(온돌)임을 자연스럽게 깨달을 수 있었다. 이 만주벌판 북방의 온돌에는 고구려를 이은 입식형 한족의 부분구들(쪽구들)과 한반도 중심의 조선족의 좌식형 통구들(전체구들)이 있다.
수많은 흙집의 온돌들을 조사하면서 ‘이렇게 작은 집에서, 이렇게 추운 곳에서, 이렇게 열악한 재료를 가지고, 이렇게 깨끗하고 포근하고 따뜻한 집을 지을 수 있구나’하는 생각을 갖게 됐다. 말하자면 한옥의 원초적인 아름다움은 자연에 널려져 있는 천연의 흙과 돌로 지은 황토방으로, 거기에 존재하는 온돌이 핵심 시설이다. 흔히 한옥하면 고래등 같은 기와집을 연상하지만 사실은 한옥의 주류는 마루, 흙벽, 초가집, 통나무 귀틀집이 가장 주류를 이룬다. 그런데 우리민족의 정과 혼이 심어져 있는 황토 초가집은 근대화와 더불어 우리에게서 멀어지고 고급 양반 기와집이 지금 이 시대의 한옥으로 대표되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 한옥은 문화재가 아닌 주택…
현대건축의 일부로
편리하고, 건강하고, 품격있고,
아름답게 짓느냐가 중요,
이를 가장 잘 구현할 전문가는
‘건축사’
그렇다면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다 한옥에 살고 싶어하는데 한옥에 살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은 이유를 생각해 보자.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한옥은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라고만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다. 한옥은 반가(班家)와 민가(民家)로 나눌 수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작은 집 초가삼간에 살았다. 초가삼간은 지금으로 보면 33제곱미터가 채 되지 않는 집이다. 우리 선비들은 예로부터 집이 작은 건 흉이 아니라고 했다. 아니 집이 작은 건 자랑이고, 집이 크면 오히려 큰 흉이었기에 벼슬길에 나가는 이가 큰 집을 가지고 있으면 그는 이미 선비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이 부족한 것으로 인식됐다.
민가는 초가집, 황토구들방, 너와집, 귀틀집 등 종류가 많다. 그런데 초가집은 현대생활에 유지가 어렵고, 귀틀집도 산간지역도 아닌 곳에서는 비용대비 효과 면에서 그리 적합하지 않다. 황토구들방 역시 건축사의 역할이 절실히 필요한 부분이다.
◆ 변호사는 법과 인권을 수호하고,
의사는 질병으로부터 생명을 보호하며,
건축사는 국민의 행복하고 안전한 주거환경을 책임진다
요즘은 건강건축을 추구하고 전원생활을 꿈꾸는 현대인들 중에 황토구들방 하나쯤 지어서 살고 싶어 한다. 황토구들방이 건강에 좋다는 것을 누구나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건강에도 좋고 저렴한 비용으로 지을 수 있는 좋은 한옥이다. 그런데 이런 집은 소위 집장사 (건축)업자에게 맡기기가 쉽지 않은 특징이 있다. 왜냐하면 신용을 담보할 수 있는 소위 이름이 알려진 업체는 공사비가 적기 때문에 관리의 어려움에 비해 이윤도 적고 하자처리가 어려워서 이런 소규모 황토방을 맡으려고 하지 않는다.
짓는 사람도 충분한 이윤을 목표로 하니 공사비는 가성비 수준을 훌쩍 넘기게 되고 계획초기부터 서로의 신뢰를 구축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좋은 시공업자를 만나면 되는데 좋은 업자, 나쁜 업자 구별은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아무리 좋은 업자도 건축주와의 이해관계에 따라 나쁜 시공업자가 되기 일쑤이다. 변호사와 의사와 건축사는 공인이다. 변호사는 법과 인권을 수호하고, 의사는 질병으로부터 생명을 보호한다. 건축사는 국민의 행복하고 안전한 주거환경을 책임지는 자이기에 건축주는 건축사와 함께해야 좋은 집을 지을 수 있다.
◆ 한옥의 창호, 인테리어, 냉난방설비는
건축사가 기술을 발휘해
역할을 해야 될 부분 많아
건축은 그 특성상 날씨와 대지조건 주변 영향이 큰 현장성이 있고, 전기, 설비, 토목, 목공, 부엌 싱크대, 가구, 조명, 정화조, 수장, 도장, 조경, 보일러 등 결국 하도급이나 부분 공정분할 형태로 이루어진다. 그 와중에 건축주가 원하는 건강 건축을 담보하면서 짓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일괄 도급의 어려움이 큰 분야이기도 하다.
오죽하면 옛말에 집 지을 때 죽을 운이 있다고까지 했는데, 집은 살아생전 사는 물건 중 가장 비싼 물건인데다 한 번 사면 무를 수도 없을뿐더러, 집 짓는 사람은 대부분 자기 집을 처음 짓지만 업자는 수없이 집을 지었기에 공사 관련 분쟁이 생기면 그 게임은 거의 업자가 이기게 된다. 결국 대안은 건축주가 진두지휘하여 각 공정별로 분할도급 방식으로 하는 직영으로 짓는 것이 대안이 되는데, 이것이 우리 한옥 전통의 ‘품앗이’라 할 수 있고, 일종의 실비정산 도급방식이라고 생각 할 수 있다
지을 때도 재미있고 보람이 있고 서로서로 돕고 이웃이 되고 속 썩지 않고, 자재도 내가 원하는 건강하고 환경을 보호하는 자재를 사니까, 돈도 적당히 들고 돈을 들인 만큼 건강한 건축으로 만족하게 되는 그런 ‘집짓기 공동체’를 만나는 것이 대안이 된다. 그러면 집을 짓는 것이 노동이 아니라 즐거움이 된다.
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검증된 그룹에서 먼저 품앗이로 봉사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요즘은 인터넷이 잘 보급되고 온라인 집짓기 관련 정보나 모임이 활발하여 ‘건축주학교’나 ‘집짓기학교’ 같은 곳에서 여러 정보를 습득하고 또한 발품을 팔아서 여러 집짓기 현장을 답사하고 무엇보다도 집 지은 소비자들의 경험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좋은 업자는 따로 없다. 내가 한옥 황토방건축에 대해 먼저 알고 배우고 봉사하여, 최고의 건축 설계 전문가인 건축사와 함께 소위 나쁜 업자(?)를 좋은 업자로 만드는 지혜가 필요한 때이다.
뜬금없이 코로나19로 뒤숭숭한 지금 개성하고 가까운 쪽 민통선 부근에 남북 실향민을 위한 황토방 ‘한옥마을’ 하나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