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원(圓)을 그리다
한 바퀴 돌고 다시 출발점에 서다
직장생활 27년 만에 사무소를 개업했다. 직원 2명인 사무소의 신입사원으로 시작해 긴 시간을 돌고 돌아 다시 2명의 사무소에 왔다. 달라진 것은 내가 오너가 되었다는 것이다.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큰 원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원점에서 출발점에 서게 됐다. 두려움과 설렘을 간직한 채 앞으로 새로운 큰 원을 하나 더 만들고자 한다.
왜 최고 사무소를 그만 두었나
2018년 12월 과천시에 개업을 했다. 개업 전엔 역사와 전통을 가진 멋진 사무소에서 월급쟁이로 지냈다. 그곳에 있는 동안 위기도 겪었지만 대한민국 최고의 건축사사무소 일원이라는 커다란 자부심이 있었다. 9년 차에 입사해서 28년 차에 퇴사하기까지 차곡차곡 승진해서 마지막에는 대표이사까지 됐다. 그러나 마음 한 편으로는 사무소를 경영하는 오너 건축사들에 대한 부러움이 있었다. 개업을 하겠다고 하니 일부 지인들은 조금 늦은 것 아니냐고 걱정하며 선뜻 동의해주진 않았는데, 그냥 했다. 걱정도 많았지만 한편으로는 도전해보고 싶었다.
다들 궁금해 한다. 오랫동안 큰 곳에서 일했는데, 그때와 달라진 것은 무엇이고 문제점은 없는지, 왜 좋은 사무소를 그만두고 나왔는지 등등……. 더 늦으면 영영 내 사무소를 못 해볼 것 같았고, 인생에서 가장 큰 후회로 남을 것 같았다. 매일 부부가 새벽에 출근하다 보니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니는 세 아들들은 매일 아침 대충 시리얼로 식사하곤 했는데 그 모습이 안타까웠다. 집과 가까운 곳에 사무소를 개업하면 아들들에게 아침을 챙겨주고 출근할 수 있겠다, 하는 생각 또한 개업의 이유 중 하나다. 매일 한 시간이 넘는 출퇴근에 지쳐가고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간절했다. 그래서 집 가까운 곳에 사무소를 마련했다.
개업 초보, 하나씩 배워 나간다
개업을 하고 보니 하나부터 열까지 생소하고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사무실을 임대하는 것에서부터 사업자 등록에, 건축사사무소 개설신고……. 협회 전입도 해야 했다. 거기에 사무소 운영과 관련된 세무 지식, 건축사공제조합 가입, 보증증권 발행, 직원들의 이직과 경력직 채용의 어려움, 세움터의 난해함, 허가에 사용승인 업무대행까지……. 야근을 밥 먹듯이 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적응이 됐다. 시청 건축 민원 상담과 허가권자 감리 업무는 올해가 가기 전에 경험해볼 수 있을 듯하다.
신입 회원이 되다
개업 전 대한건축사협회와 서울특별시건축사회 등 소속이었지만 개업 후에는 대한건축사협회, 경기도건축사회, 지역건축사회로 전입을 해야 했다. 나름 협회 활동을 열심히 해왔기에 지역 건축사회 가입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하지만 개업한 즉시 가입을 하지 못하고 어쩌다 보니 5개월 정도 미루게 됐다. 처음 개업하는 건축사에게 가입비가 부담으로 다가온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도건축사회에 먼저 가입하고 그 후 지역건축사회에 가입할까도 생각했었으나 지역건축사회에 먼저 가입을 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어 결과적으로 몇 개월 동안 경기도에도 지역에도 가입하지 못하는 무소속 상태로 지냈다.
현재는 가입을 한 상태라 지역건축사회의 따뜻한 돌봄을 받고 있는데, 그중 하나는 문자 정보다. 중요한 공지사항들을 놓치지 않게 수시로 보내줘 큰 도움이 된다. 코로나19 상황이 수시로 보고되는 긴급재난문자와 비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비회원인 개업 건축사는 이런 정보를 어떻게 받을까……. 물론 스스로 찾아보면 되긴 하겠지만…….
개인적으로 건축사 모두 대한건축사협회에 가입한다면 협회 차원의 일사불란한 시스템 하에 우리의 위상도 더 높아지리라 생각한다.
함께 극복하길
업계에 종사하면서 꼭 개선됐으면 하고 느낀 부분은 건축허가 현장조사 검사 대행과 사용승인 대행, 이 두 가지다. 대가 기준이 너무 형편없이 적게 책정됐다고 생각한다. 처음 내가 건축허가 현장조사 검사자로 지정됐을 땐 설계도면에 표현된 현황 레벨이 실제와 달라 현장에 몇 차례나 방문하고 도면 검토에도 많은 시간을 소모했다. 물론 처음이라 그런 탓도 있겠지만 나중에 그 대가를 알았을 땐 건축사로서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법적인 행정처분도 따른다고 하니, 시간 당 단가 기준만 적용할 것이 아니라 책임 부분에 대한 대가도 당연히 반영돼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개업 후 일 년 간은 운 좋게 몇 개의 계약이 성사되고 바쁜 한해를 보냈다. 그러나 대망의 2020년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프로젝트가 지연돼 뜻하지 않은 ‘어쩌다 여유’를 즐기고 있다. 하지만 이 상황이 오래 가진 않았으면 좋겠다. 다시 그리는 나의 새로운 원과 우리 모두의 원이 보름달처럼 탐스러워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