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 무렵

- 박은정

  죽을 때까지 함께하겠다는 말은
  기억 속에서만 살아남았다
 
  처방전을 주고
  색색의 알약을 삼키고
 
  다들 그렇게 사는 것 같았으니까

  그런데 선생님, 저는 이미
  잃을 것도 없고 얻고 싶은 것도 없는
  시간들을 투약한 지 오래예요

  눈 내리는 밤 제설차 밑으로
  스스로 들어가는 고양이

  어떤 자책도 없이
  자신의 잠을 모두 쏟아내는

 

-「밤과 꿈의 뉘앙스」박은정 시집
   민음사 / 2020년

언어는 둘 째 치고 시인은 이미 예민한 몸의 소유자다. 정신은 그렇다 치고 시인은 이미 한 호흡에서도 영원을 사는 몸을 가지고 있다. 가장 첨단의 시는 언제나 몸의 문제다. 시집을 펼치면 제일 먼저 읽게 되는 첫 편에 시인들의 신경이 예민하게 쏠리지 않을 리가 없다. “다들 그렇게 사는 것 같았으니까” 자기도 그렇게 사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아마 이 시인의 시는 그 자각에서 어디론가 스며들어 갔고, 들어가 보니 거기가 시인 줄 알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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