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형장 건축사

특별한 도시, 서울이 지방 도시 부산에게 선수를 놓친 몇 가지가 있다. 오래전 본협회로부터 한국건축산업대전 TF팀 참가요청이 있어 서울을 오갈 때 일이다. 친분을 쌓게 된 서울의 모 건축사 한 분과 소줏잔을 기울이며 기억에 남을 만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적이 있다. 그는 부산에 선수를 빼앗긴 중요한 3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건축사신문’ 제호, ‘부산국제영화제’, 그리고 ‘부산국제건축문화제’ 라며 짙은 아쉬움과 부러운 심정을 토로했었다.

가볍게 듣고 넘겼지만 발갛게 상기된 얼굴과 진지한 그의 눈빛을 보면서 어느 정도 진심임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때 들었던 매끄럽고 장황했던 서울말을 부산말로 간단히 번역하면, “촌 사람들에게 선수를 빼앗긴 게 X팔리기도 하고, 촌 동네에서 그렇게 억수로 잘해낼 줄은 몰랐다”는 요지로 기억된다.

멀리서 새벽차타고 회의 참석차 달려온 이에게 던져주는 위로의 멘트일 수도 있겠으나, 팀 공식 회의에서도 몇 번인가 더 거론된 적이 있었다. 이후 나는 틈만 나면 이런저런 자리에서 목소리 깔고 어깨에 가볍게 힘까지 주어가며 그날의 이야기를 닳도록 재생시켜가며 부산건축제를 자랑해왔다.

2001년 출발한 ‘부산국제건축문화제’는 이미 국제적이라는 자신감과 ‘건축 속에 문화가 녹아있음’인데 굳이 역전앞, 족발과 같은 중복어는 떼어내고 ‘부산 건축제’라는 이름으로 곧 20주년을 목전에 두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2003년 제3회 ‘심포지엄분과’, 4회·5회 ‘국제공모분과위원회’까지 초창기 문화제 행사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이후 프로그래머를 거쳐 현재 감사직까지 수행하고 있으니 오래된 연인처럼 질긴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셈이다.

그동안 부산건축제는 국내 최초의 국제건축문화제로 건축가치의 저변확대와 도시의 발전, 건축문화 창달에 기여한 바, 적지 않은 성과를 보여왔다. 물론 반드시 바람직한 방향으로만 흘러온 것은 아니다. 초창기 일회성 전시, 이벤트 치중, 사회적 과제에 대한 대응이나 다수의 참여성에 대한 실효성 등에 있어서는 적지 않은 예산과 인력의 헌신에도 불구하고 미흡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해를 더 할수록 시스템 재정비와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하여 발전을 거듭해온 건 명백한 사실이다.

작년에는 조직위가 민간으로 이양되었다. 부모 품을 벗어나 스무살 청년으로 거듭 성숙한 셈이다. 늘 바라왔던 일이긴 하나 막상 시의 예산을 벗어나 스스로 판을 키워 가야한다는 부담감도 적지 않다. 그러나 올해 ‘포용도시’라는 슬로건을 이미 확정하여 1년차, 부산만의 새로운 도시공동주거형 제안을 시작으로 2년차, 부산의 정체성과 부산다운 건축 구현, 그리고 관문도시 부산건축의 미래에 대한 3년차 계획까지 수립되어 있는 터라 지금까지처럼 잘해 나갈 것이다.

오늘은 좀 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지금까지 건축제를 쭉 지켜보면서 가장 아쉽고 안타까웠던 부분은 우리 건축사의 역할 부분이었다. 그동안 많은 선후배, 동료 건축사들의 헌신과 참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이 잔치는 남의 잔치처럼 느껴진 건 무엇 때문이었을까? 혹자들은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살기 바쁜데 문화제는 무슨, 과연 그럴까? 늘 해왔던 것처럼 밤을 새워 같은 일을 반복하고 앞만 보고 달리는 것만이 능사일까? 우리의 생존전략 가운데 업역을 다양하게 넓혀가고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 내는 일도 매우 중요하지만 스스로 가치를 높여 오히려 천직으로 알고 있는 건축설계, 이 일만으로도 가치 있게 해내고 제대로 대우받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우리의 가치를 높이는 일, 20년의 역사를 유구하게 이어오고 있는 부산건축제는 아주 훌륭한 배경과 든든한 수단을 제공해 줄 것이다. 이제 웬만한 시도에서도 다양한 건축축제가 열리고 있는 것으로 안다. 지나간 부산건축제 행사 가운데 우리들만의 축제가 아니라 일반인들에게 다가가는 기획의 일환으로 치루어진 ‘찾아가는 건축아카데미’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우선 시민들의 관심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특히 설계의 가치와 집짓기 순서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기 위한 ‘우리집 짓기를 위한 건축교실’ 과정은 금세 수강신청이 마감되는 엄청난 참여도를 보여주었다. 건축에 대한, 설계에 대한, 그리고 건축사가 하는 일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는 자리였다. 집을 지을 때 집장사를 먼저 찾아가는 게 아니라 건축사를 먼저 찾아가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와 함께 제대로 된 설계비를 왜 주어야 하는지를 들려주는 내내 그 분들의 눈빛은 형형했고 표정은 시종 진지했다.

‘설계비를 제대로 받기 위한 방법’ 그동안 우리들이 간과한 부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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