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급반 탁구교실에서

- 이영옥

공이 온다
공만이 아는 길로 공이 온다
공을 쫓아가면 칠 수 없다
눈앞에 온 공을 밀어내듯이 스윙해야 한다
관심 없었다는 듯이,
기를 쓰고 따라가면 공은 보란 듯이 빗나간다
당신이 내게 왔을 때도
무관심한 척,
힘을 따라간 방향은 곧잘 엉뚱한 곳에서 멈춘다
공이 온다.
공만이 아는 어떤 힘이 온다
곡선을 감추고 멀쩡한 직선으로
내게로 온다는 생각으로 벌써 땀이 난다
주고받는 관계란 없었던 길을 내는 것
공이 온다
당신이 오고 있다
도무지 알 수 없는 길을 숨기고 온다

 

-「사라진 입들」 이영옥 시집
   천년의 시작 / 2007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라고 정현종 시인은 그의 ‘방문객’에서 얘기했다. 정현종 시인은 왜 어마어마한 일이냐면은, 하고 그의 시를 전개 시켰지만 이영옥 시인은 어떻게 오는지를 이 시에서 말하고 있다. 그것은 “공만이 아는 어떤 힘”이고, “도무지 알 수 없는 길”로 온다. 더구나 그 길을 “숨기고” 온다. 그렇게 한 사람이 한 사람에게 왔을 때 우리는 그것을 운명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운명의 중력장은 이미 당신과 나 사이에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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