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전통건축에서 두리기둥은 궁궐, 관아, 사찰 등 권위건축에서만 쓰고, 민가나 격이 낮은 건물에서는 네모기둥으로 쓴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 선조들은 반드시 그것만 구분해서 썼던 것은 아니다.

▲ 경회루 삼십육궁지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아름답다는 경복궁 경회루는 하늘의 별자리를 담아냈다고 한다. 1년은 24절기이므로 이것을 다시 나누어, 기둥의 개수를 48로 48절기를 표현했다. 등등. 이것은 하지, 동지, 춘추분에 따라 기둥 그림자의 위치가 일정한 위치에 떨어진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심지어 이 그림자를 가지고 앙부일부처럼 시각까지도 알 수 있었다.(이런 철학적 내용은 고종 때, 임금의 명령으로 간단하게 정리하여 책으로 나와 있고, 이것을 풀이한 박사학위 논문도 나와 있다) 그러나 우리가 모르는 점은 겉 기둥을 네모꼴로 하고 안 기둥은 두리(둥근)기둥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것을 흔히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난 형상”을 모사한 것이라고 얼버무린다.

그러나 이것은 주지하다시피, 전혀 다른 기능을 한다는 사실을 우리 선조들은 알고 있었다. 네모기둥은 공간을 가두는 역할을 하고 두리기둥은 공간을 열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경회루의 설계자는, 건물 내부 전체를 통간으로 보이고 싶었던 것이고 건물 갓에서는 공간을 가둬서 바깥의 연못과 공간을 구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공간이 열려버리는 (상호관입 - 일본말) 것은 너무 횡 해서 공간감(크기)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 경회루 누다락
▲ 경회루 하층

이런 공간의 조작은 조선조 선비들이 만들었던 많은 정사, 제실에서 볼 수 있다. 전통 교육의 이념은 지덕체의 전인교육이 목표였기 때문에,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음악과 미술, 체육 교육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지금 고 미술품에서도 선비들의 문방사우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마찬가지로 그들이 건축했던 많은 서원, 정사, 제실에도 그들의 철학이 깃들어 있다.

조그만 마을, 영양 석보(두들)의 석천서당을 보자.<사진3, 그림2> 그것이 자리한, 마을 앞 전망이 좋은 위치도 그만이지만, 작은 건물인데도 네모난 기둥과 두리기둥을 구별하여 쓰고 있음을 본다. 정면 4간 집으로서 5개의 기둥이 있는데, 복판 2칸 대청의 중앙 기둥과 양쪽 가의 기둥만 두리기둥으로 쓰고 있다. 중앙의 기둥은 2간의 대청이 하나의 공간으로 느껴지도록 두리기둥을 박았을 것이고, 양 가의 기둥은 건물의 모가 각진 것을 싫어하는 한국적 정서가 물씬 풍겨난다.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면을 맞추어 공간을 가둬야 하기 때문에 네모기둥을 사용했다. 정말 조그만 건물인데도 이렇게 세심한 주의를 기우렸다. 지금 사진에서 보는 정면의 돌계단은 편리한 기능을 살려서 넓게 개축하고 말았다. 예전에는 반 정도로 좁았는데, 제자들에게 恭敬을 가르치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매사에 조심하라는 의미에서 좁게 만들었다. 그것을 고치지 말도록 그렇게나 내가 말했건만, 현대는 주자학의 공경보다는 편함이 우선인 세상인가 보다.

▲ 영양 두들마을 석천서당 전면(문화재청)
▲ 석천서당 평면도(명지대학교 부설한국건축문화연구소, 전통문화마을 보존전승을 위한 모델 개발 연구, 1994)

담양 소쇄원의 광풍각도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3간 x 3간의 건물 복판에 구들 한간을 두는 간잡이인데, 공간을 가둬야 하는 구들만 네모기둥이고 갓 기둥은 모두 두리기둥을 써서 주변의 경관을 건물 내부로 끌어들이고 있다. 경회루와는 전혀 다른 방식인데, 경회루는 내부공간이 너무 크기 때문에 인간적 스케일로 공간을 닫는 것이고, 이쪽은 공간이 좁기 때문에 공간을 열어 주는 것이다. 이런 예는 유고 건축뿐만 아니고 수많은 절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보이지 않는 공간에는 집굽(기단)과 처마 끝선이 있다. 이것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 추녀 끝에는 활주(추녀를 받치는 기둥)를 세워둔다. 이것은 힘을 받는 것이 아니란 느낌을 주기 위해 일부러 비뚤어 세우는 것인데, 근자에 문화재를 보수하면서 힘을 잘 받으라고 활주를 똑바로 세워주는 친절함을 보기도 한다.

▲ 담양 소쇄원의 광풍각
▲ 담양 소쇄원의 광풍각(네이버 백과사전)

다른 예로 장흥 방촌마을의 장천재를 들어본다. 장천재는 ㄷ자 집인데 복판에 강당인 공부방이 있고 양쪽 날개에 누마루를 달았다. 동쪽 누마루는 낮은데 안마당으로만 열려 있으며 앞과 측면은 판문으로 닫아 두고 있다. 반면에 서쪽에 누마루는 한단 높게 만들어졌을 뿐 아니라, 사방을 틔우고 난간까지 둘렀다. 단번에 이쪽은 학생들의 휴식공간이고 저쪽은 선생님의 遊息공간임을 짐작할 수 있다. 왜일까? 닫힌 공간과 열린 공간, 바닥의 높이 차가, 학생은 휴식 때도 외부와 시선을 차단하고 선생의 遊息하는 모습도 보면서 배우는 것이리라-- 이 집 서쪽 구석에는 특별히 주리논자 식의 차를 마시는 찻방이 있어서 이채롭다. 참고하면 도움이 되리라-- 정면에서 보는 계단과 축대, 기단은 20세기 미학을 반영하여 거대하게만 만들어져서, 옛 선비들의 정취가 나고 있지 않지만 좌우대칭으로 집을 세운 것을 보면, 이 집 주인 위백규 선생이 대단히 원리 원칙주의자임을 짐작할 수 있다.

▲ 장흥 장천재(네이버 백과사전)
▲ 장흥 장천재 전경(네이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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