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쪽행 편도
북쪽마을에서의 일 년

- 심재휘

자고 일어나 또 차를 몰고 갔다
밀 수확도 끝난 들판 사이로
트랜스 캐나다 하이웨이가
며칠 동안 길었다
2차선 도로와 서쪽만 전부이던 박모였고
언덕길 아래 멀리
중앙선 위의 검은 점 하나
점점 커지며 다가왔다
차들이 빠르게 달려도 꼼짝 않고 길 한가운데에 서 있던
까마귀 한 마리
길에 누워 일어나지 못하는
한 까마귀의 곁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어두워지고 있었고
길 끝에 또 길이 있었고
하루를 눈물로 가득 채운다 해도
되돌아가기엔 이미 늦은 저녁이었다
 

-『중국인 맹인 안마사』 심재휘 시집
   문예중앙 / 2014년

시간의 비가역성을 굳이 따지지 않더라도 우리는 어떤 일에 당했을 때 운명처럼 길이 정해졌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어디서 들은 것도 아니요, 누가 해 준 말도 아닌 것이, 오랫동안 나를 만든 것처럼, 한순간에 나를 지배하고 내 행동을 이끌 때가 있다. 그 순간의 나를 어떻게 정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다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같은 행동일 것이다. “되돌아가기엔 이미 늦은 저녁”이 아니라, 되돌아가도 또 같은 저녁이다.
<함성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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