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1965년, 시쳇말로 인테리어회사인 풍성공사에 입사하였다. 사장까지 6명이 하는 일은 비어홀, 캬바레, 스탠드 바, 다방 등의 실내장식과 제빵·제화점의 윈도우 디스플레이, 새 자재인 아크릴로 간판 만들기, 유리창의 선팅과 광고성냥의 디자인 그리고 특이하게 국립극장 및 드라마센터의 소품이었다. 영화 타워링의 소재가 된 대연각호텔 자리의 무학성 카바레 보수, 차범석 선생 곁에서 관람한 국립극장의 산불 공연, 국내초연 아이다의 주인공용 목걸이 등을 남대문시장에서 조달하다 퇴짜 맞은 일들은 지금도 생생하다. ▲당시 한국은 국민소득이 2,000달러 이하의 빈국이었다. 따라서 주로 먹고 마시는 영업집을 중심으로 한 인테리어는 전문업체가 없어 길공사 같은 대형 간판업체들이 맡았고, 이들은 미대 출신들을 영입하여 이런 일들을 할 때였다. 그러나 5.16 이후 첫 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순항은 산업화의 불을 당겼고 한양대는 건축의장과를 신설하였다. 웨스틴 조선호텔 이후 70년대의 롯데호텔과 백화점의 신축 그리고 국가주도의 국립공원 내 호텔 신축은 이 땅에 인테리어의 새로운 개념을 정립하는 계기가 되었는데, 필자도 금문건축의장을 공동 설립하여 이러한 일들에 참여하였다. ▲인테리어라는 말이 대중화되고 각 대학에 우후죽순으로 인테리어관련학과가 신설되기 시작한 것은 서울올림픽 전 후로 봐야하는데 지금도 그 이름이 실내디자인과, 실내건축과, 인테리어디자인과, 실내공간디자인과, 실내건축디자인학과 등 통일되지 않았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이들 중엔 카바레 무대가 좁다고 콘크리트 기둥을 자르기도 하고, 멋대로 슬래브를 털기도 하는 등 무지몽매한 작업을 하였으나 실내건축기사, 기능사가 시험을 통해 배출하고 건설의 단종업체로 성장, 제도권에 정착하였다. 무역센터 쇼핑몰은 강물을 컨셉으로 디자인하였고, 이젠 일본과 미국의 아류에서 벗어난 멋진 작품들을 내놓고 있다. ▲변호사의 업무범위에 세무사가 있듯이 건축사 또한 인테리어가 업무범위에 있다. 그러나 실제로 겸무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 그만큼 다기화, 전문화된 것이다. 그러나 인테리어 디자이너들은 알아야 한다. 자동차 등 산업과 의류, 게임, 조명, 그래픽을 디자인하는 이를 ‘Designer’라 하는데 유독 건축만 ‘Architecture designer’가 아니고 ‘Architect’인가? 토목, 전기, 기계 등 모든 기술사들이 설계와 시공을 겸무하는데 왜 건축분야만 건축사와 기술사로 나눠, 건축사만 설계를 할 수 있게 만들었는가? 필자는 한국인테리어디자이너협회(KOSID)의 창립회원인데, 그들의 홈피를 보니 ‘Interior Designer’가 어느새 ‘Interior Architects / Designer’로 바뀌어져 있었다. Architect 함부로 쓰는 것이 아니다. Architect는 건축사지만 Architect는 조물주를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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