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 건축사(Architect)를 경험하는 두 가지 방법, 영화 그리고 남양행 기차표

영화 ‘마리오 보타 : 영혼을 위한 건축’ 이유리 기자l승인2020.02.03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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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건축에 신선한 획을 그은 스위스 건축사 마리오 보타. 그의 작품과 신념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마리오 보타 : 영혼을 위한 건축’이 23일 한국 극장가를 찾았다. 스위스의 산 지오반니 바티스타 교회, 중국의 나자후 모스크 사원, 이스라엘의 심발리스타 유대교 회당 등으로 알려진 마리오 보타(본인 출연)가 한국 남양에서 성모 마리아 대성당을 건축하는 과정을 담았다는 점에 개봉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성지 건축에 대한 건축사의 열정을 영화는 어떻게 풀어냈을까?

◆ 비극 위에 믿음과
   인간다움의 상징을 세운다는 것

가족들의 인터뷰에 의하면, 밥을 먹을 때 스케치를 하고, 잠을 자다가 ‘뭔가를 해야’한다며 책상 앞으로 가는 등 마리오 보타의 생활은 온통 ‘건축’에 맞춰져 있다. 그의 작업물들이 주로 성지다보니 다른 건축물에 비해 특히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하는 일이 중요할 것이다. 남양 대성당 작업 역시 고뇌의 연속이었다. 명상의 공원을 만들고자 다양한 프로그램을 계획한 이상각 신부의 용기와 이번 건축 프로젝트를 위해 몇 년 간 헌금을 모았다는 신도들의 열정에 감명 받아 프로젝트에 착수하기는 했지만, 마리오 보타가 처음 성지를 방문했을 때 그곳은 산책로밖에 없는 빈 땅이었다. 물론 이것이 그곳의 전부는 아니었다.

남양 대성당 대지는 조선 초기 병인박해라는 아픈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그 때문이었을까. 마리오 보타의 사명감은 분명했고, 한국에 토착화된 독특한 천주교 문화를 돌아보는 태도는 섬세했다. 그는 인간과 역사를 이어주는 중력, 즉 영적인 믿음을 건축물로 표현하고자 했다. 2,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 성당은 골짜기처럼 움푹 파인 대지 속에서 하나의 댐처럼 주변과 조화를 이룬다. 성당 북쪽에 위치한 두 개의 탑 사이로는 수직적이고 강렬한 빛이 쏟아져 나와 두 탑 사이를 관통한다. 반면에 신자들이 모이는 공간은 둥근 지붕을 통해 들어온 간접광으로 평화로우면서 신성한 분위기가 감돈다.

이는 글로도 이해할 수 있는 정보다. 그러나 한 건축사의 일상을 오가며 하나의 성당이 지어지는 과정을 ‘목격’하는 일은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는 달랐다. 건축물이 지어지기까지의 거대하면서도 디테일한 과정들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영화는 의미가 있다. 오랜 기독교 전통을 간직한 소수 엘리트 중심의 작은 유럽 성당들과 달리, 한국 특유의 역사성을 간직한 대규모 성당을 짓는 과정을 보는 것은 그 자체로 반가운 감동이었다.

▲ 남양 성모 마리아 대성당 정면 모습(사진=이상각 신부)

◆ 종교에만 ‘믿음’이 필요한 건 아니다

영화는 남양 대성당뿐만 아니라 신앙심을 키웠던 그의 어린 시절부터 스승 루이스 칸에게 사사받았던 청년기, 그가 설계한 5개국 성지 건축물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를 살짝 뒤로 미뤄도 좋을 만큼 그의 건축물들이 주는 압도감에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다. 사선으로 자른 원통형 외관에 나무를 심어서 가시면류관처럼 보이는 파리 이브리 교회, 스위스의 산 지오반니 바티스타 교회의 붉은 벽돌, 유리천장으로 바라다 보이는 빛줄기와 파란 하늘, 자연과 함께 늘 변화할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건축물 내부 직선들…….

음악은 마치 페이스메이커처럼 건축물을 멀리서 바라보기도 하고 내부로 들어가기도 하고 때로는 장면을 앞질러 나가기도 하면서 건축물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웅장한 음악에서부터 재즈처럼 자유롭게 흘러가는 음악들까지 각 나라 성당에 어울리는 음악들은 신성하면서도 개성적인 건축물의 분위기를 살려준다. 동시에 기묘하게도 막 끝난 공연장처럼 영화 장면마다 고요한 긴 여운을 남긴다.

지금은 세계 성지 건축사로 추앙받는 마리오 보타지만 그가 처음 작품을 선보였을 당시에는 논란이 있었다. 가령 산 지오반니 바티스타 성당은 그곳에서 생산한 대리석과 화강암을 번갈아 쌓아 층을 이룬 모양이 기존 성당들과 다르다고, 즉 ‘혁신적’이어서 문제로 지적됐다. 그러나 이제는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가 쌓아온 인생을 통해서 그가 추구하는 성지 건축물을 이해하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속에서 그는 말한다. 성당은 단순해야 한다,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인 만큼 성당은 기술적인 부분보다 역사와 문화를 해석한 은유적 가치관이 담겨 있는 창의적인 건축물이어야 한다고. 아름다운 건축을 위해서는 건축을 믿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종교뿐만이 아니라 건축술에도 믿음이 필요한 모양이다. 비단 건축에만 해당되는 말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 공중에서 촬영한 남양 성모 마리아 대성당(사진=이상각 신부)

◆ 마리오 보타, 영화와 현실 사이

영화는 르카르노 영화제에 처음 공개된 이후 밀라노 디자인 필름 페스티발에서 관객상을 수상하는 등 세계 건축 관련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영화가 끝난 후 떠오르는 마리오 보타의 얼굴은 새롭다. ‘건축사(Architect)’라는 직책에 ‘순수한 예술가’의 인상이 더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심플한 아름다움의 건축물들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한편 안도감도 든다. 이런 건축사와 함께 현 시대를 살고 있어서 참 다행이다, 하는 안도감이다.

종교적 엄숙함과 예술적 아름다움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의 성지 건축은 종교와 대중이 교감할 수 있는 소중한 건축적 성과다. 그는 성지 건축의 역할을 잘 알고 있는 예술가다. 영화를 감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남양을 방문해 성모 마리아 대성당을 감상하면 어떨까. 성지 건축에 대한 마리오 보타의 열정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비행기 티켓은 필요 없다.

이유리 기자  leeyr87@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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