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할 수 없는 애인

함성호 시인l승인2020.02.03 11:47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말 할 수 없는 애인

- 김이듬

물이 없어도 표류하고 싶어서
외롭거나 괴롭지 않아도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곳으로 떠났다 돌아오거나 영 돌아오지 않겠지
가까운 곳에서 찾았어
우리는 모였지 인도 아프리카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사람들과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국인 학생들
지난해 여름부터 나는 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었어
불한당 청년들의 표류처럼 불규칙적이었지만
무서운 속도로 어휘와 문법을 습득하는 그들이 참 신기하더라
말이 무색해서 팔다리를 브이 자로 벌렸지
매일매일 뱃멀미가 났어
멀리서 돈 벌러 온 한 이방인에게 나는 미약했지만
그의 까만 손가락이 내 얼굴을 두드렸지
장난스럽게 단지 두드리는 시늉만 했는지 몰라
전혀 두드리지 않았는지 몰라
적절한 문장을 못 찾겠어 도무지 사랑할 수밖에
그는 자신의 긴 이야기를 음악 소리로 듣는 마을에 가서
내 갈색 귀에 다 털려버렸지 코 고는 소리도 뭔가 이상했어
외국인 남자는 어떨까 상상하지 않았다면
말 못할 관계로 가지 않았다면 나는 살아 있는 것이 아니었어
생면부지의 것들을 만나고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
사귀지 않는다면
위험하지 않다면 살아 있는 게 아닌 것 아니지만
끝없이 문제를 만들어야 했어
시험 문항을 만들고
혼혈의 아이들을 낳아 식탁에 둘러앉아 각자의 모국어를 섞어
말할지도 몰라
콩밥을 나누고 에이즈 환자 모임에 가야 한다 해도
사랑한다면 사랑할 수밖에
너와 헤어진 다음 날 그를 사랑했어

 

-「말 할 수 없는 애인』김이듬 시집
   문학과지성사 / 2011년

“왜 나를 사랑해?”라는 질문에 정답이란 없는 것 같다. 사랑을 정의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사랑을 한다. 경험하지만 정의 할 수 없는 것. 사랑의 또 한 편에는 죽음이 있다. 죽음은 우리가 분명히 정의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반대편에 삶이 있기 때문이다. 정의 할 수 있지만 경험 할 수는 없는 것, 그것이 죽음이다. 그래서 사랑과 죽음은 서로 짝한다. 우리가 사랑하면서 죽음을 느끼는 이유다.

함성호 시인  .

&<저작권자 ©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기기사

여백
신문사소개광고안내광고문의기사제보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대한건축사협회  |  서울특별시 서초구 효령로 317 건축사회관 9층 편집국  |  대표전화 : 02)3415-6862~6865  |  팩스 : 02)3415-6899
등록번호 : 서울 다 09707  |  등록연월일 : 2009년 5월 8일  |  발행인 : 석정훈  |  편집인 겸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성용
Copyright © 2020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