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새

- 김연숙
 
언젠가는 저 틈새를 건너야 한다
춤을 추듯 가볍게
건너야 한다
공포는 지금
살아 있다는 표시
성(聖) 카타리나의 심장도 몹시 뛰었다
소리를 내며 맞물려 오는 톱니바퀴엔
굳은 피와 뼛조각 끼어 있었다
두 눈을 감았을까
두 개의 바퀴가 굴러온다
성녀는 아름답게
힘있게
틈새를 뛰어 넘었다
공포는 크고 아름다운 문이었다
 

 

-『눈부신 꽝』 김연숙 시집
문학동네 / 2015년
성카타리나는 4세기경에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했던 순교자다. 실재했는지에 대해 여러 의문이 있지만, 뛰어난 학식으로 박해자들을 오히려 기독교도로 개종시켰다. 그녀는 로마황제 막센티우스에게 못이 박힌 바퀴에 깔려 죽는 형에 처해졌지만 바퀴는 어떤 신비한 힘에 의해 성녀에게 닿기 전에 부서져 버렸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성녀는 아름답게 / 힘있게” 두 개의 바퀴 틈새를 뛰어 넘는다. 틈새는 그렇게 “아름다운 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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