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 심포니를 들어보면, 1악장∼4악장 등 여러 장으로 구성되었는데 처음부터 전체적으로 들어도 좋고 어떤 경우에는 한 악장만 골라서 듣기도 한다. 우리나라 음악도 마찬가지이다. 고전 정악으로 유명한 영상회상 같은 경우도, 몇 편의 음악이 하나로 모아서 구성되었다. 마당극이나 무속음악도 마찬가지이다. 여러 마당으로 이루어져, 하룻밤을 꼬박 새면서 연주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러나 그것도 나누어 본다면 몇 편의 토막극으로 볼 수 있다. 아주 단가(짧은 음악)라고 할 수 있는 시조 같은 경우에도 초, 중, 종장이라고 해서, 아주 간단한 율동과 가사를 만든다.

건축도 마찬가지이다. 안채와 사랑채, 대문간이 죽 일직선으로 늘어서 있는, 즉 1개의 축만 가진 공간 구성이 가장 단순하고 일반적이다. 대문을 지나면 사랑채가 나오고 사랑채를 돌면 안채가 앉혀지는 형상이다. 권위는 있어 보이지만 공간의 음악적-율동의-맛은 떨어진다. 중국 건축은 멋없이 지루할 정도로 이렇게 만든다. 반면에 우리는 일직선 축이면서도 건물을 비뚤어 앉혀서 얼굴을 약간 비켜 볼 수 있게 한다. 부석사 무량수전이 대표적인 경우인데, 우리나라 전통 초상화의 기법을 보는 듯하다. 어떤 시점에서 보면 초상화의 얼굴을 돌려두듯 건물을 20도 정도 틀어둔다. 집 앞에는 중문 턱인 범종루를 세워서, 이렇게 한 지점에서만 바라볼 수밖에 없도록 시각점을 고정한다.

▲ 부석사 무량수전의 비켜 본 얼굴
▲ 2개의 축이 직교하는 구례 화엄사(민족문화대백과사전)

그러나 우리나라 사대부 주택이나 관공서 전각건축에서는 대개 2개 이상의 축을 쓴다. 앞서 설명한 바 있지만, 전통건축에는 안채와 사랑채처럼 대개 2개의 주제가 존재한다. 하나는 정신적 지주가 되는 몸통(體-사실은 머리)이고 다른 하나는 외부로 나타나는 얼굴(相-사실은 몸통)이다. 이들을 모두 일직선 축으로 배치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중국과 다르게 2개의 축을 써서 별도의 공간 얼개-음악적 율동-을 구성한다. 심지어는 2개의 축을 직교시키는 경우도 가끔 있다. 궁궐같이 큰 집에서는 3개의 축을 쓰는 수도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경복궁일 것이다. 중심축은 정전이고 동쪽 축은 내전 공간으로 동궁과 대비, 후궁 등의 공간이며 서쪽 축은 경회루가 있는 휴식의 공간이다. 우리의 경우는 이렇게 좌우가 전혀 다른 공간 구성을 하는데 비해서, 중국 자금성의 3개의 축은 완전히 같은 개념의 집들이 일직선으로만 늘어서 있다. 중국은 다만 규모만으로 압도할 뿐이지 전혀 음악적, 영화 같은 극적인 재미는 없다. 만약 피라미드가 작게 만들어졌더라면 어떤 느낌을 줬을까? 생각하면 끔직한 것과 같다. 그래서 이집트 신전들은 수없는 열주들이 서 있다.

▲ 사랑채와 안채가 2개의 축으로 구성된 강릉 선교장(민족문화대백과사전)

그리고 주요 건물(몸-양)의 앞에는 음양의 조화를 이루도록 하늘우물(天井)이라고 부르는 마당(음)을 두는데, (요즘 건축가들은 이것을 빛 우물이라고 부른다. 같은 의미일까?) 이것의 너비는 건물의 높이와 같이 하는 게 보통인데, 시각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서는 용마루 높이의 2배 길이를 잡아서 앞대문의 중심을 계산하기도 한다. (하늘 우물이라고 하면 우리가 통상 천정이라고 부르듯, 땅에 대비해서 하늘을 받친다는 뜻을 지닌다)

이런 마당의 숫자가 몇 개로 이루어졌느냐 하는 것으로, 變宅(9개 이하)과 化宅(10개 이상)의 기준을 삼는다. 변택이 되어야 비로소 공간의 음악적 율동을 느낄 수 있고, 화택이면 다양한 심포니 같은 음악적 율동(마당)을 감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당의 크고 작음은 박자의 큰 박과 작은 박의 연속이고 이것을 이어주는 목은 큰 박의 다른 맛을 보게 하기 위해 설정되는 것인데, 그 기법이 음악과는 달리 시각적으로 다양한 방법이 존재한다.

어둡게 만든 누마루 밑을 기어 나오게 한다든가, 혹은 긴 골목을 지루하게 돌아들게 만드는 것은 고전적 방법이다. 어떤 경우에는 개울을 건너는 다리를 쓰기고 하고, 축대로 가로막아 계단을 두기고 한다. 지루하고 긴 돌계단 설정은 다음의 세계를 이 세계와는 다른, 신선만이 사는 선경으로 인도해 준다.

이와 같이 양택론에서는 마당의 숫자만으로 변택과 화택을 논하고 있는데, 이것을 연결해 주는 목의 기법에 대해서는 자세한 설명이 없다. 다만 상택서나 造園론에서 감지할 수 있을 뿐인데, 옛 어른들은 전인교육을 목표로 했기 때문에 이런 방법을 자연스럽게 음악이나 그림에서 깨닫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판소리 마당에서 북을 칠 때도 단순한 악기인데도 불구하고 몇 가지가 소리가 있고 공간이 있음을 알 수 있듯, 마당의 연속에도 시간과 어둠의 강약으로 대단히 신경을 썼음을 알게 된다.

▲ 화암사 우화루 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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