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이었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2학년 때 인문반과 자연반 중에서 선택을 해야 했다. 역사를 무척이나 좋아하던 나는 인문반을 선택했다. 그렇게 2학년이 되던 날, 나는 7반 자연반에 편성되었다. 선생님께서는 “너는 종합적 사고로 자연반이 어울린다”라고 하셨고 나는 그저 그런 줄만 알았다. 아버지께서 학교를 방문하여 담임선생님께 반편성을 부탁했던 사실은 훗날 알게 되었다. 그렇게도 아버지께서는 내가 건축사가 되기를 바라셨다.

‘건축사’였던 아버지는 너무나 멋있는 사람이었다. 무엇이든 자신 있고 당당했으며 매너와 품격, 소양과 유머가 넘치는 분이셨다. 그 당당함은 어린 나에게 존경심을 고양시켜 주었고, 건축사에 대한 동경을 품게 했다. 훗날 비록 아버지께서 시의원 선거 패배와 IMF 후폭풍으로 어려움에 쳐하시기는 하였으나, 그때의 위기감이 나로 하여금 건축사의 길로 이끌었으니, 그 또한 행운이었을까?

그럼 과연, 오늘날의 나는 어떨까? 나의 아들이 나를 닮아 건축사를 꿈꿀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나는 아버지가 주신 경제적 유복함을 내 아이들에게 주지는 못하고 있다. 동료들과 동분서주하며 주어진 업무에 밤샘으로 씨름하기 일쑤이고, 구청에서는 머리를 조아리고, 건축주의 요청에 꺼이꺼이 대응하며, 일상이 고단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건축사로서 행복한가? 대답은 “그렇다”이다.

건축사라는 행복한 직업을 물려주신 아버지께 깊이 감사드린다. 예술적, 기술적 발전을 함께 도모하며 협력하는 동료 건축사들께도 감사한다. 예술적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프로젝트들에, 미래를 꿈꾸고 발전을 도모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비록 아버지께서 누렸던 경제적 윤택함에서는 떨어져 있지만, 그러한 결핍은 나를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BIM, 각종 렌더러, 프레젠테이션 스킬 등을 나날이 연마하며, 보다 나은 프로젝트를 위해 칼을 갈며 준비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아울러 대한건축사협회의 헌신적인 활동에도 감사드린다. 선배 건축사님들의 양보와 배려가 젊은 건축사들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됨을 느낀다. 특히 건축 문화제, 각종 동호회 활동을 통해 건축사들과 함께 웃고 뛰는 시간들에 감사한다. 우리가 함께 돕고 단합하며 손잡고 미래를 개척해나간다면, 아버지 시대의 윤택함과 더불어 밝고 찬란한 미래를 꿈꿀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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