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告知)
- 이학성

천상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기쁘거나 슬픈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그 외의 징후라곤 없었다.
전언은 낙원에 머무는 누구에게도
발각되지 않았다.
누구의 눈에 띄어서도 안 되는 것이었다.
대천사 가브리엘이
사이프러스 나무 숲을 헤치고 와서
뜻을 전했다.
훗날 베드로가, 어디로 가시나이까?
하고 물었을 때도
아피아 가도의 사이프러스 나무들은
자태를 뽐내며 줄지어 서 있었으리라.
AD1년이 코밑에 다가와 있었다.
새로운 세기가 혹독한
진통을 열길 기다렸다.
그렇지만 낙원의 시간은
잠시도 쉬지 않고 흘러갔다.

 

-『늙은 낙타의 일과』이학성 시집
   시와반시 / 2019년

밀레니엄의 떠들썩했던 기억도 이제 20년 전의 일이다. 그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아시아를 휩쓴 IMF사태와 시리아 내전, 세월호 참사, 중국의 부상, 이슬람 국가들의 변화, 홍콩 시위까지. 21세기도 20년이 지났다. 이제야 비로소 20세기는 과거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아주 다른 세상이 온 것도 아니다. 전언이란 누군가에게 들려야 마땅한 것인데 이 시에서는 감춰야 할 것이 된다. “새로운 세기의 혹독한 진통”과 “낙원의 시간”이 같이 가고 있다. 그렇다면 뜻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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