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여 년 전 황태자의 첫사랑으로 유명한 독일의 하이델베르그에 며칠 머물 때였다. 도착했을 때 보았던 호텔 앞 보도블록 교체작업이 사흘 동안 거의 제자리에 머물러 있던 광경을 보고 놀랐다. 한국 같으면 몇 십m 아니 100여m는 교체할 수 있었던 기간이었기 때문이다. 저리해서 밥벌이가 될까 걱정했지만, 다시 한 번 생각하니 독일 제품이 전 세계에서 신뢰 받는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서울의 경우 멀쩡한 보도블록을 걷어내고 다시 까는 일이 연말이 다기오면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다. 사유인즉 낡고 문제 있는 보도블록을 교체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기간이 지나면 교체하는 규정을 두어 상태와 관계없이 바꾼다는 것이며, 안 바꾸면 다음해 예산이 줄어들기 때문에 시행한다는 어이없는 말을 들은바 있다. 또한 바꾼 지 얼마 안 되어 바닥이 들어가고, 모서리가 무너지는 부실시공과 유치한 색깔의 조합으로 도시미관을 해치기도 하였다. 또한 통상적으론 지하수원 보호를 위하여 빗물이 지하로 스며들도록 흙을 잘 다진 후에 까는 것이 원칙임에도 불구하고 하자를 줄이기 위해 연약지반에나 쓰는 ‘콘크리트 위에 블록 깔기’를 거의 모든 곳에서 함부로 쓰이는 것이 비일비재하였다. ▶경복궁 근정전 앞 품계석이 있는 광장은 박석을 깔았다. 다듬지 않은 돌은 빛의 반사가 적고, 있다 해도 난반사이기에 눈부심이 없다. 또한 박석 사이를 떼어 깔고 그 사이에 풀이 나게 하여 요즈음 친환경자재로 유용하게 쓰이는 잔디블록과 같은 역할을 함으로써 지하수의 보존과 지열을 흡수하는 효과를 가져 오게 하였다. ▶서울시는 박원순 시장이 일본에서 보고 온 보도블록 실명제를 시행한다면서 아홉 가지 방안을 내놓았다. 한국은 실명제는 그 역사가 신라로부터 시작된다. 경주 남산 신성비에 의하면, 진평왕 때 2,800보에 이르는 축성공사를 하면서 구역별 책임 관리와 지역명 그리고 지역 책임자 및 거리를 기록하고 3년 안에 무너질 경우 처벌받을 것을 기록하였다. 또한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성역의궤를 보면 인부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과 노임까지 일일이 완벽하게 기록하여 성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기록문화로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다. ▶이러한 우리의 기록문화 대신 일본에서 교훈을 얻은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이로서 보다 틈실한 보도가 될 것을 기대한다. 아울러 기왕 혁신적인 블록깔기를 시행한다면 궁궐부터 사찰, 향교, 객사 등에 두루 쓰였던 우리 전통의 전돌을 현대화하여 한국만의 독특한 보도블록을 깔았으면 한다. 요즈음은 K-POP에 이어 한국음식이 세계인의 미각을 자극한다고 한다. 덩달아 한국 상품의 인지도는 상승되고 있다. 국제화는 이와 같이 한국적인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보도블록 또한 한국만의 것을 만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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