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에서 공간 연속의 체험을 음악에 비유하는 연구 논문은 많이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글이 기데온의 “시간, 공간과 건축”이란 책이다. 그는 이 글에서 르네상스 건축을 3차원의 공간 건축이라고 규정하고 근경, 중경과 원경이 있는 공간건축이라고 말했다. 반면에 근대 건축사들이 장식과다라고 평가 절하했던 바로크 건축을 움직이는 시간건축이라고 과찬하면서, 이를 계승한 꼴뷰제를 진정한 근대 건축사라고 치켜세웠다. 꼴뷰제 자신은 이를 사보아 저택 설계에서 건축적 산책이라고 말한 바 있다.

▲ 파리 오페라하우스 내부 계단(www.operadeparis.fr)
▲ 꼴뷰제의 사보아 저택 내부 비탈길
▲ 동택(양택삼요)

우리 건축 공간에도 3차원의 공간과 움직이는 시간이 있다는 생각은 많이 하면서도, 이를 자연에 잘 순응한 건축이라고 설명하는 정도였지, 알렉산더처럼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했다. 양택론에서는 이것을 정동(靜動), 변화(變化), 택론(宅論)으로 간명하게 말하고 있다. 즉, 건축에서 햇빛이 드는 너른 마당이 1개인 집을 정택이라고 하고, 2∼4개인 집을 동택, 5∼9개인 집을 ‘변택’, 10개 이상인 집을 ‘화택’이라고 한다. 물론 마당과 마당을 연결하는 좁고 어두운 공간은 목이라고 부르며, 그것의 모양과 크기, 연결 형식에 따라 많은 기법들이 존재한다.

가난한 집은 안채와 그 앞에 놓인 마당, 그를 둘러싼 헛간채와 출입구, 정도로서 공간이 고요하고 음악적 율동의 감흥을 일으키지 않는다. 물론 여기에도 출입구에 계단을 시설한다든가 담장을 두르고 뒤란을 설정하는 등의 기교를 부릴 수는 있으나, 공간은 움직이지 않고 원근의 3차원만 존재한다. 역시 집은 안채와 사랑채의 서로 대비되는 음양 공간이 있어야 한다. 안마당과 사랑마당 등 2개 이상의 마당이 있고 이를 연결하는 좁고 어두운 공간으로서, 여러 장치들이 연속된다면 비로소 공간이 움직이는 음악이 탄생한다. 이 음악을 우리나라 가락의 가장 간단한 리듬에 맞춘다면, 단가(시조나 한시)에서 말하는 기승전결의 율동이 탄생하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통상 민택에서 조성되는 공간의 율동(음악)이다.

지금 제주에서 한참 유행하고 있는 올레 공간도 원래는 민택에 들어가는 도입부의 이름으로서, 어둡고 긴 시간을 경과하도록 계획되었다. 볕이 빛나는 마당의 절정을 맛보기 위해 긴 도입부를 설정한 것이다. 이런 외부공간을 현대건축에서는 내부공간으로 끌어들인다. 90년대 불란서 건축가 장누벨의 현상경기 당선작 전시회를 본 적이 있는데, 여기서 그는 시간과 공간을 하나의 악보로 그려서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음악의 악보라고 하면 단순히 시간에 따른 장단과 율동만을 표현하고 있는데, 무(용)보를 보면 시간과 공간 그리고 움직임의 변화를 읽을 수 있도록 채보하고 있음을 본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건축 공간도 시간과 공간, 그리고 빛과 어두움, 넓음과 비좁음 등으로 표현하고 이것의 느낌을 상대에게 전할 수 있도록 채록할 수 있을 것이다.

▲ 장누벨의 작품(Guthrie Theater)(譜)→작품집에는 나와 있음

양택론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여러 채가 겹쳐진 큰 집이 아닌 바에는 대문을 정면에 두지 말라.” “남향집에 동대문”이라는 속설이 여기서 탄생하는 것이다. 대문과 집이 똑바로 놓여서, 집안의 사람이 길가에 지나가는 사람의 동태를 살필 수 있는 것도 좋지 않지만, 대문 밖 사람이 지나가면서 집안의 낌새를 알 수 있는 것도 꺼린 것이다. 중국을 다녀 온 많은 실학자들이 중국 가옥의 단점으로 이것을 지적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것을 확실하게 단속하고 있다.

만일 사랑채 앞에 똑바로 대문간을 두고 싶으면 여러 채의 대문을 겹쳐서 원근감을 깊숙하게 만든다. 대표적인 경우가 경복궁이다. 광화문을 지나도 몇 개의 문을 지나야 중문인 근정문에 이를 수 있게 계획되었다. 이렇게 중문(남대문) 앞에 몇 개의 대문을 두어서 거리감을 표현하려고 한 계획 의지는 고려 말기 이후로서 성리학적 미학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절 앞에 여러 개의 대문채가 마련되는 것은 13세기 이후의 일이다.

외대문은 도입부의 초입으로 일주문이나 홍살문으로 암시를 주지만 민택에서는 흔히 지방돌을 쓴다. 제주의 민가에서도 그렇고 소쇄원의 초입에도 지방돌로 내외를 구분한다.

▲ 제주 초가의 지방돌

상징적인 의미가 강하다. 다음은 안마당에 들어서는 중문으로 큰 대문을 두는데, 높은 계단 위의 솟을삼문을 쓰거나 혹은 누마루 집을 쓴다. 높은 계단 위의 솟을삼문과 머리를 내리눌리는 어두운 공간은 느낌을 같이 하므로 누마루를 이용하기도 한다.

▲ 누마루를 기어들어가는 누마루-부석사 범종루
▲ 화산서원 내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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