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빛은 설악부터 내린다.
그럼에도 가을빛과 함께 다가오는 식욕은 남쪽으로 향한다. 그중에서도 고풍스러운 고건축과 수경정원이 있고, 고목이 가득한 마을로 가면 마음이 더욱 설레인다. 고풍스러운 전통 정원과 역사와 이야기가 가득한 곳으로 제일 먼저 떠오르는 곳이 ‘남원’이다. 그중에서도 남원하면 광한루, 광한루 하면 성춘향과 이몽룡의 이야기, 그리고 추어탕과 게장의 먹거리가 가득해 긴 걸음을 재촉하게 한다.

○ 광한루원
남원 하면 광한루, 광한루 하면 춘향전이 떠오른다. 광한루 주변 남원 추어탕집에선 남도의 식도락을 한껏 만끽할 수 있다. 남원만 가면 점심으로 게장을 먹을까 추어탕을 먹을까 고민하는 식도락의 고장이기도 하다.
남원 광한루원으로 찾아갔다. 다양한 광한루원내의 시설들과 이야기를 여유롭게 느껴봤다. 최근에는 광한루와 연계하여 관광지 활성화가 진행 중이다. 특히 광한루와 그 담장 등 주변시설, 요천변과 승월교, 승월폭포와 춘향테마파크 등 걸어서 관광할 수 있는 시설이 많다. 낮의 남원에서 밤의 야경이 멋진 남원이 되길 기대하며 광한루원을 산책한다. 광한루원은 1419년 세종원년 황희가 광통루를 세우고 1434년 세종16년에 부사 민공을 중수한다. 1437년에는 부사 유지례가 단청을 칠하고 1444년 세종 6년 하동부원군 정인지가 광한루로 개칭한다. 1582년 전라관찰사 정철이 호수를 조성하고 주위를 석축하여 3개의 섬을 만들었다. 그 호수 이름이 용성지다. 남원부사 장의국이 재임 중 광한루를 중수하고 오작교를 축조했다.
광한루는 1597년부터 1795년까지 4번의 중수를 한다. 정유재란 때 왜군에 의해 불타 없어져 1599년 남원부사 원신이 광한루를 재건하고, 1626년 중건하여 1795년 남원부사 이만길이 영주각을 중수한다. 1950년에는 남원지가 1972년에는 증보 남원지를 축조한다. 월매집은 1985년 광한루원을 확장하여 월매집, 춘향관, 서문을 신축하고 1998년 광한루원 관리사무소를 신축한다. 광한루는 보물 281호이며 광한루원은 사적 303호, 명승 33호로 지정됐다. 광한루원의 완월정에서는 춘향제를 지내는 중요 장소이며, 1931년 제1회 춘향제를 시작으로 2019년에는 89회를 맞이하는 전통공연예술의 진수를 보여주는 한국전통문화의 산실이다.

○ 삼신산
신선이 살고 있다는 전설 속의 삼신산을 만들어 조성했다. 정문으로 들어가서 우측으로 보이는 수로와 멋스러운 수목이 있는 삼신산은 왼쪽섬이 영주산(瀛州山), 가운데가 봉래산(蓬萊山), 오른쪽 오작교 옆에 있는 섬이 방장산(方丈山)이다. 섬과 섬 사이에는 아담한 구름다리가 있고, 영주산에는 영주각이, 방장산에는 6각의 방장정이 소담하게 지어져 있다. 우리나라의 한라산은 영주산, 금강산은 봉래산, 지리산은 방장산에 해당한다. 방장정에 앉아 섬을 둘러싼 수로와 오작교, 가을 단풍이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려낸다. 수로와 구름다리 주변에는 사람의 그림자를 따라 붙는 잉어와 안면어들이 볼거리를 제공한다. 사계절을 사는지 물고기의 크기가 1미터 남짓 되는 것도 많다

○ 비석군
삼신산을 돌아 광한루가 물속에 투영되는 모습을 보며 광한루로 이동하면 수십 개의 비석군이 보인다. 광한루원이 춘향전과 관련 있는 것만이 아닌 다양한 남원의 역사를 담아놓은 역할을 한다. 이곳 비석은 과거에 남원과 인연을 맺은 부사(府使), 관찰사(觀察使), 어사(御史)들의 사적비(事跡碑) 및 선정비(善政碑) 등이다. 예전에는 남원 시내 여러 곳에 흩어져 있었으나, 도시개발 과정에서 소실과 훼손을 방지하고자 이곳으로 옮겨 놓았다. 비석의 제작 연대기는 조선 중기부터 후기까지 다양하여 남원의 역사와 비석형식의 변천과정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 광한루(廣寒樓)
비석군 옆의 건물은 광한루원의 메인 건물인 광한루다. 보물 제281호로 지정되었으며, 조선시대 이름난 황희 정승이 남원에 유배되었을 때 지은 것으로 처음에는 광통루(廣通樓역)라 불렸다. 세종 26년(1444) 정인지가 건물이 전설 속의 달나라 궁전인 광한청허부를 닮았다 하여 광한루라 고쳐 부르게 됐다. 이후 선조 15년(1582)년에는 정철이 건물 앞에 다리를 만들고 그 위를 가로질러 오작교라는 반원형 교각의 다리를 놓았다. 지금의 건물은 정유재란(1597) 때 불 탄 것을 인조 4년(1626)에 다시 지은 것이다. 건물 북쪽 중앙의 층계는 점점 기우는 건물을 지탱하기 위해 고종 때 만들었다.
광한루는 위로 올라가지는 못한다. 루에서 바라보는 삼신산과 오작교의 아름다운 풍경은 잠시 광한루 아래의 거북바위에서 감상해 볼 수 있다. 광한루 뒷쪽에서 올라가는 곳에는 계관(桂觀)이란 한자가 크게 적혀있다. 달나라의 계수나무가 바라다 보인다는 의미다.

○ 완월정
광한루에서 나와 아름다운 석교를 지난다. 원형 아치형의 오작교를 지난다. 오작교 주변의 수경에 비춰진 고목들과 건축물들이 광한루원의 아름다움을 더한다. 오작교를 지나면서 광한루원에 가득 울려 퍼지는 전통음악이 흘러나오는 방향에 완월정이 있다.
정자 안에 음향시설을 설치하여 광한루원에 가득 퍼지는 음악과 함께 전통정원의 멋스러움에 흠뻑 빠진다. 완월정에 올라서면 정면 쪽의 아름다운 풍경이 보인다. 루의 교각은 위험하여 기대지는 못하고 잠시 외부 감상만 가능하다.
전설에 따르면 옥황상제가 계신 옥경(玉京)에는 광한전이 있고, 은하수 위에 오작교가 놓여 있다. 계관(달나라 궁전)의 절경 속에서 아름다운 선녀들이 노닐었다고 한다. 이를 재현한 것이 광한루원이다. 광한루는 천상의 광한전을 재현한 것이며, 완월정은 이 달나라 풍경을 감상하기 위해 지은 누각이다. 겹처마 팔작지붕의 전통적 조선시대 건축 양식이다. 완월정에서는 남원의 민속 행사인 춘향제가 해마다 열리고 있다.

광한루원을 산책하는 즐거움을 뒤로 하고 이제는 춘향전과 관련된 장소로 자연스럽게 이동하게 된다. 완월정을 뒤로 하고 나서면 초가지붕의 모습과 그네가 보인다. 춘향전과 관련하여 재현해놓은 건축물들과 이야기 거리가 가득하다.

남도를 돌아오는 길, 늘 다시 오겠다는 생각이 절로 난다. 건축물만 보던 시기에서 이제는 건축물과 어우러진 자연경관, 조경, 수경, 그리고 삶의 흔적을 같이 보는 것이 새롭다.
그것에 더하여 이야기를 담은 전통 고건축은 더욱 정감있게 다가온다. 남원은 그 중심에 있는 지역이며, 광한루만이 아닌 광한루원으로서의 많은 볼거리와 이야기는 사람들의 마음과 발을 잡아 두게 한다. 이제는 광한루원과 주변 관광지와 연계하여 지나치는 남원이 아닌 하루 정도 묵어 낮과 밤을 같이 즐기는 곳이 된 남원을 꼭 둘러보시길 권한다.
[글 일부 출처=광한루원 안내문 및 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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