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찡코

- 송승언


죽고 싶은 마음이 칼을 찾지는 않고
죽고 싶은 마음이 강을 찾지는 않고
죽고 싶은 마음이 빠찡코를 찾는다
죽고 싶은 마음들이 빠찡코에 모인다
아무도 없는 거리를 보며 아무도
없는 거리를 지나가면
시인 두엇쯤이 앉아 있는 빠찡코가 보인다

쭉 뻗는 그 손으로 시에 대한
각서를 쓰지는 말고
쭉 뻗는 그 손으로
목매다는 밧줄을 묶지는 말고
레버를 당긴다
그것이 스툴에 앉아 있는 시인들의 마음이다

죽고 싶은 마음들이 모여 빠찡코는 만석
죽고 싶은 마음들이 흩어져 마음들이 죽어도
죽고 싶은 마음이 칼을 찾지는 않고
빠찡코 이제 그만
빠찡코 너무 좋아


- 『사랑과 교육』송승언 시집 / 민음사 / 2019년

이 도박장의 풍경을 그대로 문학의 풍경이라고 해도 될까? 적어도 시와 시인들을 묶어서 ‘시의 풍경’이라고 불러도 괜찮을 것 같다. 시인들은 시가 오길 기다린다. 그 풍경이 아마도 빠찡코에 의식없이 돈을 밀어넣고 레버를 당기는 도박장의 풍경과 흡사할 거라 생각한다. 그러다 잭팟이 터지면 이제까지의 모든 시간들이 갑자기 기다림이 되고 설레임이 되는 순간! 그런 순간들을 시인은 기대한다. 말이 ‘기대한다’는 말이지, 그건 굉장히 무의미하고 지루한 시간들이다. 그 시간들을 의미로 만들어 버리는 순간이 있다. 왔다! 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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