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뒤에 산이 있고 앞으로 물이 흐르는(背山臨水) 남향받이 집터는 굳이 풍수를 논하지 않더라도 말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다. 여기에 하나를 더한다면 텃밭이 넓어야 한다는 것이다. ▲텃밭 또는 터전(田)은 집터에 딸리거나 집 가까이 있는 밭을 말하며 대부분 가족들의 부식을 생산하는데만 쓰였다. 그렇기에 텃밭에는 철 따라 상추, 쑥갓부터 오이, 마늘, 고추는 물론 김장채소까지 심었고, 예전에는 옷감재료인 삼도 심었다. 그러기에 우리네는 모교를 말할 때도 나를 길러준 터전라든지, 집도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터전이라 하여 터와 밭(田)을 하나로 일컫고 있다. ▲텃밭은 넓을수록 좋다. 이는 생산량 외에도, 좁으면 필수 부식만을 심어야 하지만 넓으면 수박이나 참외 같은 기호식품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넓은 경우엔 과원(果園)을 만들었다. ▲도리행화(桃李杏花)는 과원의 대표적인 나무들로서 피는 순서는 살구꽃이 먼저인데 글에는 복숭아가 처음에 온다. 시문에도 복사꽃이 압권이다. 도원결의는 삼국지의 시작이고, 박두진은 ‘영동을 지나며’ 나들이 간 시혼을 부른다. “이 벌을 지나면 저기 / 남향받이 산기슭 / 그 다소곳한 마을에 / 복사꽃 오 오! // 화안히 그 / 복사꽃은 피리니.” 정극인은 상춘곡에서 “복사꽃 살구꽃은 석양 속에 피어 있고 / 푸른 버들 향기론 풀은 이슬비에 푸르구나”라 노래했고, 이태백은 “ 복사꽃 흐르는 물에 묘연히 떠나가니桃花流水杳然去 / 인간세상 아닌 별천지에 있다네別有天地非人間”라는 명시를 지었다. ▲필자도 젊은 날 고향집의 복사꽃 핀 과원을 반추한다. “소쩍새 울음소리에 초저녁 잠 깨어보니 / 창문에 밀려드는 환한 달빛이 고와 / 문 열고 마중하려 뜨락에 서니 / 복사꽃 달 빛 속에 활짝 피었네 // 복사꽃 나무아래 밀짚방석 깔아 논 후 / 술 한 잔 따라놓고 젓대 잡아 노래하니 / 연분홍 살구꽃잎 나비가 되어 / 잔속의 달님을 얼싸 안누나 / 어릴 적 소꼽동무 그 어디 있어 / 이 좋은 봄밤을 함께 할거나.” ▲고향 텃밭의 향수에 젖은 도시인들은 화분에 무, 배추를 심어 장독대 위에서 키우기도 하고, 아파트에선 베란다를 이용해 상추를 기른다. 또한 경제적으로는 배보다 배꼽이 큰 주말농장에서 손수 가꾼 채소에 희열을 느낀다 ▲서울시는 한강텃밭을 시민들에게 분양하려다 국토부와 환경단체의 반대에 부딪혀 위치를 변경하고 축소하였는데, 이런 환경규제는 이미 선진국에서 시행하고 있다. 이와는 다르게 서울 동대문구는 대지200m2 이상에 신축할 경우 텃밭을 의무화하여 시민의 욕구를 충족시키려하고 있다. 기왕이면 과실수에도 인센티브를 주어 꽃과 과실의 일거양득을 취함도 좋을듯하다. 그리되면 도심 옥상의 복사꽃 아래서 봄밤을 즐길 날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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