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여행
- 이영주

각자의 말들로 서로를 물들일 수 있을까

나는 그의 어둠과 다른 색

오래전 이동해 온 고통이
여기에 와서 쉬고 있다

어떤 불행도 가끔은 쉬었다 간다

옆에 앉는다

노인이 지팡이를 내려놓고
태양을 바라보고 있다

흰 이를 드러내며 나는 웃고

우리의 혼혈은 어떤 언어일지 생각한다
 

-『어떤 사랑도 기록하지 말기를』 / 이영주 시집 / 문학과지성사 / 2019

한 길도 안 되는 사람의 마음이야말로 알 수 없는 세계라고 한다. 오죽 답답했으면 저런 속담이 생겼을까도 싶다. 그만큼 ‘너’라는 존재는 ‘나’에게 있어 외계보다 더 멀다.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가 반겨줄 이가 있는 곳으로 돌아오는 길이 어쩐지 그 곳에서 만난 나의 고통보다 더 멀 때가 있다. 언어가 차라리 색이었다면 더 좋았을까? “어떤 불행도 가끔은 쉬었다 간다.” 정말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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