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4택의 이론은 비단 주택뿐만이 아니고, 궁궐이나 관공서는 물론 심지어 도시계획의 이론에까지 적용한다. 예를 들면 조선조의 수도인 서울(한양‧漢陽)의 배치 계획을 보자.

▲ 한양의 도시계획도인 수선전도

우리나라 읍성 계획은 예제(禮制)에 따라 귀죽인 네모꼴 성곽 안에 우자형 가로를 배치한다. ㅇ자리에 관공서를 두고 ㅜ자 길을 낸 다음 좌우 끝에 동서대문과 남쪽에 남대문을 두는 방식이다. 서울 역시 이와 별반 다르지 않지만, 주요 관공서 건물이 정궁인 경복궁과 이궁인 창덕궁으로 2개가 되는 것과 서울이기 때문에 기타 주요 관청들도 대단히 많은 점이 다른 도시와 전혀 다르다.

서울의 도시 계획은 동대문인 흥인지문과 서대문인 돈의문의 거리를 3,000보로 분수하여 중심을 잡는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는 화성이 지름 2,000보이고 일반 관찰사가 있는 목(牧)은 500보, 군은 300보, 현은 250보, 진은 100보 정도인데 현장 사정에 따라 약간의 편차를 둔다) 그 안에 내접하는 네모꼴 형상이 거주지인데, 서울은 대략 한 변의 길이가 2,100보인 네모꼴이 된다. 이것을 홍범구주(정전법)에 따라 9개로 나누면, 한 변이 700보인 네모꼴 구획을 복판 1개와 팔방의 8개 구획을 얻는다. 조선초기에는 원의 중심에 원각사 삼문을 두었는데, 후기에는 조금 어긋나지만 시각을 알리는 보신각을 중심으로 삼았다. 보신각 대각선 맞은편에는 의금부가 있어서, 보신각의 시각과 의금부의 법, 그리고 원각사의 정신을 나라의 근간으로 삼았다. 그러나 후기에는 원각사를 폐지하여 나라의 정신적 지주를 계절과 시각으로 삼았다.

이 중심(보신각이나 원각사 삼문)에 나침반을 놓고 보면 정궁인 경복궁이 건(북서)방에 놓인다. 이것은 서사택에 속하므로 남대문(숭례문)을 남쪽으로 내지 못하고 남서방인 곤방에 둔다. 물론 남쪽으로 내기가 남산이 가로 막혀 어려운 점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서사택에 속하므로 숭례문이 남쪽을 향하지 못하고 거의 서향하여 앉혀 있다. 이에 따라 또 하나의 이궁인 창덕궁과 창경궁은 서사택에 속하는 간방(북동쪽)에 배치했다. 간방은 원래 1년의 시작이고 우주 운행의 시작점이므로 여기에 사당을 앉히는 것이 원칙이다. 따라서 이곳에 종묘가 배치되고 그 뒤로 성균관이 옹색하지만 자리를 마련한다. 북쪽은 동사택 자리이므로 민가(북촌)가 들어서게 계획하고, 광해군(임진란) 이후에 건축된 경희궁과 경운궁(덕수궁)도 서울의 서쪽인 태방에 자리한다. 임진란 때 침략군인 왜군이 동쪽 흥인지문을 타고 넘어 왔음으로 이후에는 동사택으로 궁궐을 배치하려고 하는 의도가 보인다.

▲ 창덕궁 인정문(안상열, 안상열 사진집 線과色의 속삭임,2012)
▲ 종묘 영녕전(안상열, 안상열 사진집 線과色의 속삭임, 2012)
▲ 경복궁 배치도 - 동사택 배치

그러나 각 궁의 배치를 보면 그 계획이 더욱 재미가 있음을 본다. 경복궁의 경우 “군자는 남면하여 정치를 한다.”는 유교의 교리에 따라 남향을 한다.(정남향은 아니다) 경복궁 근정전 지시랑청(낙수물 자리) 중앙에 나침반을 놓고 보면, 침전인 교태전, 정문인 근정문이 남북 축선 상에 있어서 모두 동사택이며 여기서 보면 숭례문도 동사택 자리에 놓여 있다.<사진3> 창덕궁을 보자. 인정전 앞에 나침반을 두고 보면, 인정전은 남향하고 있지만 침전인 대조전은 간(艮‧북동)방인 서사택에 놓였다. 따라서 정문인 돈화문도 남서쪽인 곤방에 비뚤어 두는데, 한양의 남대(숭례)문도 여기서 보면 역시 서사택의 곤방으로 놓이게 된다.

▲ 덕수궁 전체배치도 - 동사택 배치
▲ 창경궁 내전권역의 구분과 진입 동선 (이만희, 창경궁 내전권역 공간구성에 대한 연구, 명지대학교 산업대학원, 2010)

창경궁은 5대궁 가운데 유일하게 동향하여 배치되었다. 정전인 명정전 앞에 나침반을 놓고 보면 주요 기능을 가진 건물은 동사택으로 놓았는데 침전은 북서쪽 건방에 있어서 명정전과는 다른 서사택을 택하고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다른 궁궐도 마찬가지이지만, 침전이 다시 중궁전(연희당)을 중심으로 전후좌우 6개의 구간으로 나뉘어서, 각각 하나의 후궁들이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가운데 서사택에 해당하는 공간에는 나인처소 등 낮은 계급의 후궁이 기거하도록 계획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정확한 방위보다는 전후좌우라는 풍수적 개념으로 계획하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경희궁과 경운(덕수)궁 역시 정전은 남향하고 있지만 정문인 홍화문과 대한문은 모두 동향을 하고 있어서 집을 동사택으로 배치하려고 했던 의도를 알 수 있다. 이 경우, 수선전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동대문인 흥인지문을 정문으로 삼아 종로 길이 경희궁의 홍화문과 일직선상에 놓여 있고, 덕수궁의 대한문 역시 정면의 길은 을지로로 뻗어가서 동대문에 이름을 알 수 있다. 이는 의례의 남대문인 숭례문의 상징성을 버리고 흥인지문(동대문)을 한양의 정문으로 삼아 도시계획의 기점을 삼으려고 했던 의도가 엿보인다. 이와 같이 동서사택의 이론은, 일개 민택 뿐만이 아니고 도시계획, 심지어는 국토계획에 이르기까지 적용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를 8도로 구획한 것도 이 이론에 따른 것이다.

▲ 경희궁 - 동사택 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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