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건축주들은 나보다 나이가 많다. 한 번은 건축주를 만나는 자리에 갔다가 이런 대화가 오갔다.
"안녕하세요. 건축사무솝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소장님은 아직 안 오셨나요?"
"제가 소장인데요."
“아이고, 죄송합니다. 직원인 줄 알았어요. 허허허.”

나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사무실을 내고 현장에 뛰어들었다. 처음 사무실을 내고 가장 어려웠던 점은 건축주를 상대하는 일이었다. 직원으로 있던 시절, 건축주와 직접 대화할 일은 거의 없었다. 기껏해야 건축주 날인이 필요한 서류를 요청하는 정도가 전부였다. 건축주 미팅을 하더라도 회의록을 정리하거나 소장님이 정리해주는 내용을 반영이 가능한지 검토하는 정도의 대화가 내 일이었다. 하지만 직접 사무실을 열고 보니 그때 내가 하지 않았던 모든 일이 지금의 내 업무가 되었다. 처음으로 계약서를 한 줄 한 줄 자세히 읽어보았고 업무범위와 기간, 납품목록을 직접 정해야 했다.
무엇보다 건축주와 직접 대화하고 설득하고 계약을 맺는 데까지가 정말 힘들었다. 일이야 어떻게든 해나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처음 보는 사람과 신뢰를 쌓고 계약을 하기까지가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다. 누구나 다 하는 일인 줄 알았던 것들이 실상은 다들 정말 어렵게 해나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찾아오는 건축주들은 아무리 젊어도 40대 이상이었다. 그러다보니 나와는 10년 이상 나이 차가 났고, 나이에서 오는 세대 차이는 더욱 무시할 수 없었다. 간혹 자리가 길어져 이런저런 대화 중에 불쑥 정치 얘기라도 나오면 곤란한 상황에 맞닥뜨리고는 했다.
나이 얘기는 현장에서도 이어진다. 한 번은 인테리어 현장 감리를 한 적이 있었다. 천장 한 편이 외부로 노출되어서 단열을 해야 했는데 단열재를 목재틀 위에 얹어놓기만 하는 게 아닌가. 깜짝 놀라 현장 소장님께 단열의 기본은 기밀이니 천장 단열은 접착을 해주시고 화스너로 고정해 달라 얘기했다. 그러자 옆에서 단열재를 올려놓던 목수분이 대뜸, 어디 어린 놈이 와서 어른들 일하는데 이래라 저래라 하냐며 역정을 냈다. 부지불식간에 어린 놈이 되어버린 나도 화가 나서 한 마디도 지지 않고 따박따박 대답했다. 다행히 중간에 있던 현장 소장님이 말린 덕분에 일이 더 커지진 않았다. 하지만 그때 내가 나이 지긋한 사람이었다면 그 목수분이 내 얘기를 조금이라도 더 들어주려고 하지 않았을까. 나 또한 조금 더 경험이 있었다면 좋게 이야기했을 텐데 하는 후회도 든다.
다행히 지금은 조금이나마 경험이 쌓이다 보니 좋지 않은 얘기를 좋게 포장해서 하는 법을 배우고, 현장에서 고생하시는 분들에게 밝게 인사하는 법을 배웠다. 일단 웃으며 시작하니 후에 여기저기 고칠 부분이 생겨 현장이 지체되더라도 분위기가 험악해지는 것은 피할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백팩을 메고 도면을 든 채 이리저리 검측하고, 현장에 계신 분들과 이런저런 협의를 한다.

“그런데, 소장님은 바쁘신가 봐요? 직원분이 열심히 하시네.”
“아, 예. 근데 제가 소장입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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