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짝 한물가긴 했지만 TV만 틀면 소위 베테랑 요리사라 자부하는 셰프들이 예능프로그램을 장악하던 때가 있었다. 지금껏 한번이라도 이처럼 많은 전문 직업인이 대중매체에 등장한 적이 있었던가. 그들의 현란한 요리 솜씨는 둘째 치고 방송 몇 번 출연으로 일약 스타가 되는 그들의 새로운 인생이 궁금하기만 했었다.
김연아와 박세리는 또 어떤가. 국민의 관심 밖이던 불모지에서 뛰어난 기량을 선보임으로써 개인의 성공을 넘어 피겨스케이팅은 어느새 국민의 사랑을 받는 대표 종목이 됐다. 김연아 선수가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딴 금메달의 경제적 가치가 5조를 넘어선다는 보도도 있을 정도로 선수 개인의 역량은 관련 업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박세리는 그를 따르고자 하는 수많은 박세리 키즈를 탄생시켰고, 지금은 우리나라 여성 골퍼가 없는 LPGA는 상상조차 못할 정도가 됐다. 김연아와 박세리의 등장이 어마어마한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킨 셈이다
그런데 건축계는? 온 국민이 알 만한 건축사가 있는가?
중고생을 대상으로 하는 진로특강을 나갈 때마다 아는 건축사가 있는지 물어보곤 한다. 다양한 형태의 매체로 익히 알려진 덕분에 학생들은 곧잘 안토니오 가우디나 안도 타다오의 이름을 대곤하지만, 아직 단 한 번도 국내 건축사의 이름을 들은 적은 없다. 나 역시도 대학에 진학하기 전까지 건축사의 이름을 떠올린 적은 없었다.
고작해야 한때 주말 대세 프로그램이던 ‘러브하우스’에 등장한 이들이 마법처럼 뚝딱 집을 만들어내는 모습에 현혹되거나,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건축에 대한 작은 관심을 환기시키는 정도였지 싶다. 요즘처럼 다양한 경로로 문화와 예술을 접하는 세대가 삶의 근본을 이루는 건축분야에서 알 만한 전문가가 없다니.
물론 요리사, 스포츠 선수와 건축사를 같은 잣대로 비교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한 분야가 집중 조명되고 또 그 분야의 전문가가 스타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 개인의 역량에만 의존해서는 곤란하다. 우선 개인의 치열한 노력이 전제되어야 하고, 그들의 실력을 알아보고 성장을 지원하는 조직과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하며, 또 이해하기 쉽고 다양한 형태로 접근할 수 있도록 대중에게 노출되어야 한다.
일반 시민의 건축에 대한 이해는 적잖이 높아졌다. 삶의 질에 대한 사고와 더불어 거주환경과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이다. 하지만 아직 대부분의 시민은 건축사라는 직업에 대하여 굉장히 제한적이거나 편협된 정보만 접하고 있다.
건축 분야에도 스타플레이어가 필요하다. 대중의 인식에 성공한 전문가가 자리매김되어야 그를 따르고자 하는 키즈들이 생기고 그들을 위한 시장이 열릴 것이며 세간의 이목도 더욱 집중하게 될 것이다. 당연히 건축사의 위상이 높아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건축환경만 놓고 보자면 스타를 배출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법은 온통 건축사의 창의력을 북돋우기보다 건축행위를 제한하거나 건축사의 책임을 묻는 내용 일색이고, 공공건축 분야에서조차 건축사의 업무 대가가 턱없이 낮게 책정되어 있으며, 사용승인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품질을 보장받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 건축행정 또한 경직되어 건축사의 창작 의지를 꺾는 경우가 허다하지 않은가.
개인의 작은 노력과 성공에도 아낌없이 박수치고 격려하자. 방송과 영화에서도 수시로 건축사를 만날 수 있도록 하자. 개인에게 전체 건축사를 대변하는 임무를 맡기자는 것이 아니다. 한 마리 나비의 아름다운 날갯짓이 불러일으킬 잔잔한 바람을 기대하자는 것이다.
우리에게도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는 셰프, 김연아, 박세리가 필요하다. 이제부터라도 그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자.

저작권자 ©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