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시설’에서 ‘삶터’가 되는 학교공간재구조화_학교공간혁신사업에 부쳐

유명희 논설위원l승인2019.09.02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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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삶으로부터  

“일주일에 5일! 하루 6시간!!=1800분!, 제가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입니다. 이제 초등 4학년인 제가 12년을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학교입니다. 친구와 함께 하고 웃고 이야기하고 공부하는 이곳이 생각만으로 미소 짓게 하는 공간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재밌는 생각을 많이 하고 얘기하는 자리에 저도 함께 하고 싶습니다.” 올 초에 진행된 융합플랫폼 프로젝트에서 많은 참가자들에게 영감을 주었던 초등생 ‘민작가(닉네임)’의 워크숍 신청사연이다. 올해 4학년인 민작가는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면서 일상의 더 많은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게 될 것이다. 관행의 절차든, 전문적 견해든, 기성세대가 당연시해 왔던 모든 걸 다 내려놓고 가만히 이 사실을 생각해본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삶의 절반이상을 집 밖에서, 그것도 주로 학교에서 보내게 되는 학생들. 학교에서 학원으로 길 위로 동네에서 집으로 그들의 삶은 이어진다. 내 아이를, 내 어릴 적 자신을 그곳에 놓아본다. 학교는 어떤 곳이어야 할까? ‘교육, 사회화’ 등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기능적 시설’이 아니라, 아이들의 배움과 생각을, 감각과 경험, 관계의 다양한 연습을 담아주는 곳이 되어야 함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 아닐까? 솜털 보송하던 말랑한 시절로부터 제법 어른 흉내 낼 줄 아는 청소년으로 성장할 때까지 10여년의 삶을 잘 살아낼 수 있도록 ‘거주의 장소’가 되어주는 ‘터전’.. 멀리 돌아온 느낌이다.

21세기의 학교로부터 

급변하는 미래세대에 요구되는 인재상은 교육의 목표와 방향을 변화시키고 있다. 이를 위하여 ‘어떠한 것’을 ‘어떠한 방식’으로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지 여러 차원에서 깊이 있는 변화가 시도되고 있다. ‘교수자중심학습(teacher-centered learning)’에서 ‘학생중심배움(student-centered learning)’으로의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분명한 것은 ‘지식 자체’가 아니라 지식을 다차원으로 결합하고 운용하여 새로운 지식체계로 재생산할 수 있는 창의적이고 협력적인 능력을 배양하는, 근본적인 ‘배움’을 담기 위하여 학교건축과 학교공간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는 것이다. 단지 교육은 ‘소프트웨어’, 학교는 ‘하드웨어’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배우는 학교(the learning school)’로서의 학교건축의 새로운 역할과 공간조건이 깊이 고민되어야 할 때다. 기존의 학교 공간도 효율성의 관점에서만이 아니라 다양한 주체들의 일상의 무대로서, 삶터로서 새로운 눈으로 속속들이 읽고 변화가능성을 재발견할 필요가 있다. 

학교건축방식과 과정으로부터 

필자는 지난 긴 시간 학교시설을 둘러싼 수많은 실패와 좌절은 어쩌면 이해당사자간의 어긋난 소통과 의사결정과정의 실패, 그 관성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그간의 행정주도의 일방향적인 학교설계프로세스에서 벗어나, 이제는 학교를 사용할 당사자들-학생들과 선생님, 학부모 등 학교의 구성원들-에게 학교에서의 삶과 배움에 대하여 묻고 의논할 시대가 되었다. 학교공간의 개선에 대해서도 큰 재화를 투입하고 뭔가를 반드시 만들거나 바꿔야 한다는 강박에서 잠시 뒤로 물러나서 학교에 대하여 가진 고정관념과 프레임을 뒤집어보고, 무엇을 위한 혁신인가, 무엇을 혁신하는가, 누구를 위한 변화인가를 다시 고민할 때가 되었다. 그간의 몇몇 시도에서 선도적으로 행해진 사업들이 있어오기는 했으나 올해부터 전국적으로 시작된 ‘학교공간혁신사업’도 이러한 배경에서 탄생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 사업의 본질적인 장점은 철학적으로 건강하다는 것이다. 학교공간을 중심으로 하여 교육의 분야와 건축의 분야, 행정의 분야가 서로 성큼 변화하여 하나의 움직임을 만들고자 시도하고 있다. 즉, 새로운 교육의 철학과 방식을 담고, 건축사의 권위보다 사용자의 권리를 묻고, 책상머리(?)행정에서 협치로의 변화가 모여 학교공간변화에 담겨지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중심에 ‘학생’들을 두고 대화를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치장이 아니라 재구성_‘학교공간혁신프로젝트’

전국의 시도별로 학교공간혁신사업이 본격화되고 있다. 사업을 위한 전문가교육도 진행되고 있다. 조금씩 방식과 진도는 다르지만 총괄기획가와 해당학교가 선정되고 적절한 과정을 통해 선정된 촉진자(+설계자)와 학교의 교원들이 사전준비기간을 거치면서 학교마다 학생, 교원 학부모 등으로 이루어진 TF팀도 만들고, 개학을 전후하여 사용자 참여 워크숍을 진행하거나 앞두고 있다. 이 과정에 많은 건축사들이 촉진자와 설계자로 활약하고 있다. 필자도 총괄디렉터로서 지금까지 지켜본 바, 익숙한 프로세스에서 벗어난 시도이다 보니 다들 아직 낯설고 건축사와 교사가 사용하는 언어부터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서로 다른 주체들의 학교공간, 교육과 배움, 배움과 놀이, 설계 등에 대한 경험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상호학습’ 과정도 필요하고, 각자가 가진 선입견들로 인해서 때로 갈등상황이나 오해가 생기기도, 행정적, 예산문제 등으로 충돌이 빚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모두에게서 변화를 열망하는 에너지가 느껴지고 그 중심에는 역시 ‘학생’을 생각하는 마음들이 있다. 

필자가 이 지면을 빌어 강조하고 싶은 것은 ‘학교공간혁신사업’의 근본적인 개념이다. 학교공간을 부분적으로 장식하거나 좋은 재료로 마감을 바꾸거나 하는 ‘실내장식’ 사업이 아니라, ‘공간의 재구조화’를 통한 결국 학교의 ‘배움문화’의 변화를 견인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프로젝트 초기부터 참여자 모두에게 프로젝트의 목표와 철학에 대한 충분한 공유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 다음으로는 사용자 참여설계과정에서 촉진자의 ‘발문’, ‘과정설계’, ‘참여결과의 재해석’이 중요해진다. 예산이 한정되다보니 학교안의 어떤 장소에 집중하게 되는데, 워크숍이나 공간수업에서 학생들에게 처음부터 ‘학교에서 바꾸고 싶은 곳이 어디니?’, ‘너는 이곳에 뭐가 있었으면 좋겠어?’ 이렇게 발문하게 되면 특정 장소로 투표가 시작되고, 그 장소에 넣을 아이템 위주로 의견이 모이게 된다. 그보다는 학교공간들을 그들의 일상의 맥락에서 다시 읽어보고 가능성 있는 장소를 재발견하도록, 그리고 물질적인 대상에 집중하기보다 그 장소에서 어떤 행위를 왜? 하고 싶은지를 내면으로 들어가 읽어낼 수 있도록 발문하고 이를 공간언어로 번역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함께 설계한 공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스스로 합의하고 결정할 수 있는 ‘공간감수성’을 길러주어야 한다. 촉진자가 정리한 공간설계방향이 잘 담긴 실시설계로 완성하기 위해서, 설계자에게는 참여설계단계에서부터 맥락을 파악하기 위한 노력이 요구된다. 그리고 비전공자인 참여자들에게 ‘안돼, 다 해봤어’, 이런 말로 주눅들게 하기 보다는 다각적으로 검토해보고 ‘가능한 방법을 찾아보자’고 이야기할 창의성과 실력이 필요하다. 이 사업에서 촉진자와 설계자에게 충분한 보수가 지급되어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프로세스의 특성상, 기획부터 워크숍 전후의 준비와 분석과정 등 단계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심함과 노력이 프로젝트의 성공의 확률을 높이게 되기 때문이다.

지속가능하고 일상적인 문화로  

초기과정에서 많은 분들이 이렇게 묻는다. 인사이트투어할 만한 좋은 학교사례를 소개해달라고, 좋은 공간의 사례를 추천해달라고.. 필자는 어떤 공간이 이렇게 바뀌면 좋겠다는 특정한 의견을 전달하거나 아예 가지지 않으려 한다. 오히려 유명 사례들을 벤치마킹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서, 자신들의 학교 문화와 색깔을 찾는 실험 속에서 그들만의 공간들이 생겨나길 바란다. 가장 바라는 것은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학교건축과 학교공간을 대하는 학생들과 교사들을 비롯한 사람들의 시각이 바뀌었으면 좋겠다. 학교 공간 자체가 좋은 공간 나쁜 공간을 떠나서 자신의 일상과 배움과 관련한 다양한 활동과 경험을 함께 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삶터’이자 ‘교육프로그램’이자 소통도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의미 있는 것은 학교공간을 중심으로 해서 다양한 주체들, 특히 학생과 교사들이 학교공간에 대한 주체성, 소유감과 공간감수성, 공간 결정권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고, 이것이 분명 그들의 학교의 삶과 학습과정 또한 지속적으로 바꾸게 하는 씨앗이자 열매가 될 것이라는 즐거운 상상이다. 더 가치로운 것은 이 프로젝트를 통하여 서로의 삶의 특이점들, 생각과 가치를 관심 가져주고 들여다봐주고 열린 상상력을 통해서 서로 다른 생각을 모으는 일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이 과정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배움이 아닐까. 이것은 학교 뿐 아니라 이 사업에 관련된 많은 주체들에게도 해당된다. 촉진자와 설계자로 참여하게 된 건축사들에게도 많은 자극과 영감이 되길 기대한다. 프로젝트 실행을 위해 익숙했던 자신의 설계방식을 넘어서 새로운 영역을 넓히는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아깝지 않은 시간이 될 것이다. 전국적으로 거대한 실험의 장이기도 해서 앞으로의 과정 과정마다 그간 경험하지 못했던 많은 어려움들을 만나게 될 지도 모르지만, 모든 것이 이 사업의 진화와 개선을 위하여 필수적인 경험이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진솔한 비판과 개선의견 또한 공유되기를 바란다. 모쪼록 학생, 교원, 학부모, 교육행정가, 촉진자, 설계자 모두 열린 마음을 가지고 영역적 간벽과 고정관념을 부수고 결을 맞추는 이 길을 기꺼이 함께 걷기를. 집단지성의 힘을 믿어본다. 

그 집의 전 존재가 우리들의 존재를 변함없이 잊지 않고 있으면서, 스스로를 펼칠 것이다. 
우리들은 예전과 같은 몸짓으로 삐걱거리는 대문을 열 것이고, 불빛 없이도 저 꼭대기 지붕 및 곳간 안으로도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제일 작은 빗장 걸쇠의 느낌까지도 우리들의 손 안에 남아있는 것이다.

이리하여 우리들은 세계를 우리들의 체험된 소묘들로 뒤덮는 것이다. 

그 소묘들은 정확할 필요는 없다. 다만 우리들의 내부 공간과 같은 빛깔로 물들어져 있으면 된다. 

공간은 행동을 부르고, 또 행동에 앞서 상상력이 활동하는 법이다. 

_가스통 바슐라르, 공간의 시학 중에서

유명희 논설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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