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이 동일한 아파트 단지 모양새로 그 도시가 그 도시 같다는 평을 많이 듣는 우리나라다. 유럽이나 미국을 가서 가장 먼저 느끼는 것은 조금만 가도 바뀌는 도시 경관이다. 이런 도시 경관의 태반을 형성하는 것이 건축이며, 그중에서도 주택이다.
우리나라 도시들도 마찬가지다. 건축사들이 도시를 바라보는 입장은 거시적으로는 미래 후손을 위한 멋진 도시와 건축을 만들어 주는 것이고, 미시적으로는 당장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업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점점 건축사들이 도시와 상관없는 사람들이 되어 가고 있다.
지나친 비약일까? 그렇지 않다.
서울에서 시작된 아파트 붐이 난공불락의 요새로 불리던 지방 도시들은 9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이 시기만 하더라도 주거난에 대응하는 것으로 전국의 중상층들은 여전히 단독주택을 중심으로 거주했다. 하지만, IMF이후 전개된 고급 마감으로 치장된 아파트단지가 브랜드를 가지고 등장한 이후 전국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건설사들이 공급하는 ‘브랜드’ 아파트들은 오랫동안 건축사들이나 건축학계가 발언했던 공공적 기능과 요소들을 부가가치 높은 상품으로 전환했다.
그 결과 지상의 정원화나 주방 공간의 강화나 화장실 등은 아파트 가격의 프리미엄 가치로 작동해서 가격 상승을 이끌었다. 더불어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주거 ‘브랜딩’을 통해서 사람들의 선호도를 조정했다. 이 과정에서 건축사는 브랜드 아파트들을 주도하지 못하고, 용역사의 역할로 머물게 되었다. 속된 말로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왕서방이 벌어가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가격 프리미엄 효과를 본 사회는 서울에 머물지 않고 전국화 되기 시작했다. 2000년 이후 아파트 단지 건축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고, 단독주택에 살던 중상층까지 아파트 거주로 편입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아파트는 건축의 시각이 아닌 상품가치로 진행되었다. 2000년대부터 강화된 상품가치로서 아파트는 더 대규모화 되고 대형화되었다. 건설은 경제적 효율성과 가시적 상품성에 치중되는 사이 도시 전체 구조와 괴리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문제는 기존 도시에서 재건축·재개발을 통해 만들어지는 단지형 아파트들이다. 이들은 기존 도시 가로 체계를 독점하고 파괴하여 도시 생태계를 뒤흔든다. 관계의 치밀한 네크워크가 21세기 4차 산업 혁명의 주요 키워드인데 우리나라 도시들은 반대로 단절과 고립으로 진행되는 셈이다. 이 과정에서 건축이 열외되고 있다. 부동산 정책에 매몰되어 도시 건축정책의 새로운 방향이 제시되지 않고 있는 것도 문제다. 70년대 도시 개발에서 변두리였던 신도시들은 이젠 도심 한복판이 되어 있다. 이에 대한 재개발·재건축 요구는 상당하다. 무엇보다 토지의 경제적 가치가 상승한 것을 주목해야 한다. 단지 집으로 활용하기에는 토지가치가 지나치게 높아 이를 전환할 시점이 되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들 지역의 용적률을 단지 인센티브 개념이 아니라 매매도구로 해서 도로 등을 공공용지로 매입해서 단지를 해체하는 것도 방법이다.
단지가 해체되어야 도시 경쟁력의 네트워크 경제가 성장하고, 무엇보다 다양한 일자리와 경제적 생태계가 생존할 수 있게 된다. 당연히 건축적 방법론이 필요해지고, 건축사들의 역할과 책임이 증가할 것이다. 소위 말해서 다양성의 주거 건축으로 도시 경관이 완성되고, 이는 미래 유산의 가치까지 확보할 수 있다.
정부와 국회는 한번 이런 고민과 정책을 연구해보면 좋겠다.
부동산을 세금으로만 통제하려 생각하지 말고, 건축적인 새로운 아이디어와 상상력으로 도전해보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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