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 30대에 주로 아파트, 주상복합, 우체국 등 비교적 규모가 큰 건축물을 설계했다. 10년 전부터는 단독주택 설계와 시공에 집중해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데, 무엇보다 ‘건축주와 공감하는 건축’을 원칙으로 삼는다.
사무소 초기엔 일반적인 건축 각론을 내세우며 건축주와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한 번은 사무소를 찾아온 건축주가 살 집에 대해 A4 1권 분량의 자료를 꺼내어 설명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기본적인 설계각론에 벗어난다”며, 내가 생각하는 건축안을 설명·설득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단독주택은 건축주가 살 공간인데 당시 꼭 그렇게 해야 했는지 자문하게 된다. 건축주의 생각 또는 원하는 공간에 대한 고려가 충분히 있었는지에 대한 물음이다.
또 단독주택 시공을 겸하고 있었기 때문에 공사비도 중요했지만, 건축주 예산에 대한 고려 없이 계획한 예산을 훌쩍 넘겨버려 결국 건축주가 계획안을 포기하거나 공사비를 낮추느라 건물이 옹색해지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내가 생각하고 원하는 건축을 할 것인가, 건축주가 생각하고 원하는 건축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수많은 과정을 경험하며 내가 원하는 설계와 건축주가 원하는 설계가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됐다.
지금의 나는 무엇보다 건축주와 의견을 충분히 나눈다. 건축주의 눈높이에서 원하는 공간과 의도, 그리고 예산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도록 시간을 갖는 것이다. 그러면 건축주와 마음도 하나가 돼 통하고, 어느새 그 곳은 나의 집이 된다.
그 외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건축주는 초기 안을 보며 자신이 생각했던 집이라며 만족하고, 덤으로 설계 기간도 단축됐다. 일반인인 건축주가 이해하기 쉽게 스케치업으로 외관을 계획·협의하고, 도면은 복잡한 도면보다는 이미지 위주로 건축주와 함께 의견을 나누는 등 공감대를 더욱 넓혀갔다. 또 시공 때 설계의도가 그대로 투영되도록 노력하면서, 공사과정에서의 분쟁도 줄어들었다.
과거의 나는 이름을 남길 만한 건축물을 디자인하겠다는 큰 꿈이 있었지만, 현재의 나는 한 명의 건축주를 위한 건축사로서 그 역할에 최선을 다한다. 찾아가면 언제든 커피를 내주며 환하게 웃어주고, 자신의 집을 기꺼이 모델하우스로 사용하라며 권하는 건축주를 만날 때 건축사로서 보람을 느낀다. ‘1인을 위한 건축’은 작은 건축으로서 큰 건물을 설계할 때와 비교해 보수는 적지만, 많은 건축주와 세상사를 나누고, 인생을 배우는 즐거움이 크다는 점을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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