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투명한
- 박세미

호수 위 얇은 얼음이 깨지고 있다
나의 어린 하마는 허우적대지 않는다
뿌연 얼음이 부서지며
날카로운 소리를 내어도
작은 두 귀만 수면 위에 띄우고 사라진다
나의 어린 하마는
아마 물속에서 좋았을 것이다
유리를 사랑한 적 있다
더이상 투명해질 수 없을 만큼 투명해서

속았다
모두 다 보여주었지만 보이지는 않았다
먹구름을 사랑한 적 있다
피부를 긁어 상처나게 하는 태양을
모두 다 가려주었지만
두 발을 들고 서도 만질 수가 없었다
나의 어린 하마는
얼음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내가 나일 확률』박세미 시집
/ 문학동네 / 2019년

사랑은 왜 많은 경우, 경험이 아니라 상처로 얘기 될까? 그것은 아마 우리는 사랑을 통해 처음으로 ‘나’가 없어지는 경험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가 없어도, 너만으로도 이미 충분했던 경험. 그 황홀의 상태가 누구 때문이든, 어떤 이유에서든 끝났을 때, 우리는 상대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상대에게 보여주었던 투명함 때문에 상처 받는다. ‘나’가 없었던 그 빈 방에 다시 들어차는 ‘나’들에 대한 경멸이 그에 대한 부정으로 바뀐다. 어린 하마는 어떻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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