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현아 건축사

건축사에게 본인이 설계한 건축 작품은 자식과도 같다. 계획단계에서부터 설계완료단계까지 그 수고와 노력은 말할 것도 없고, 시공단계에서도 현장관계자와 끊임없이 소통하며 그 아이(작품)가 세상에 잘 태어나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필자는 ‘조금만 더’라는 마음과 ‘좋은 건축을 선물해야지’하는 마음으로 수고스럽지만 여러 가지 대안을 만들며 최상의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모든 건축사들은 다 같은 마음일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건축사의 마음가짐과 태도와는 다르게 건축사를 대하는 관계자들을 만나게 되면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설계자와 상의 없이 재료나 색상을 마음대로 선정하는 발주처 담당자나 설계도면과 다르게 시공하는 시공 관계자들을 만나게 되면 난감할 수밖에 없다. 어떤 경우는 담당 건축사로서 사용승인까지 완료해 놓고도 준공식이 언제 이뤄졌는지 모르고 지나는 경우도 있다.
근래에 필자가 설계한 건물이 완공된 후 개관식이 있었다. 한 곳에서는 보름 전에 모바일로 개관식을 알려왔고 다른 한곳에서는 개관식 이틀 전에 초청장을 보내왔다. 그것도 “설계자 초청 안 하시나요?”라는 필자의 질문에 대한 표현이었다. 어떤 곳은 개관식에 설계자, 시공자, 감리자에 대한 배려는 없고 국회의원, 교수님 등에 대한 감사패가 전달됐다. 물론 그 시설 건립에 대해 노력하신 분들이므로 당연히 감사를 받으셔야 될 분들임에는 틀림없다. 추후에 관리부서와 담당부서가 달라서 그렇다는 얘기는 듣게 되었다. 그러나 “마음 담아 작품을 만들었으니 세상에 멋지게 태어나도록 잘 부탁 드립니다”라는 말을 전하며 현장 관계자분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해 온 설계자나 시공단계마다 노력해온 시공자와 감리자 분들에게도 감사의 마음은 전할 수 있지 않을까? 나이 지긋한 선배 건축사분이 준공식에 초대되어 간 자리에서 앉을 곳도 없고 담당자 얼굴도 못보고 온 경험담을 듣게 되었을 때 실망스럽고 마음이 불편했던 기억이 있다. 그것도 기업의 대표이셨는데 말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필자에게는 좋은 추억으로 간직된 준공식이 있다. 2년 전 ‘칠곡군 장애인 종합복지관’ 개관 기념식에 참석하게 됐다. 군청 담당자분은 한 달 전부터 우편으로 초대장을 보내오고 개관 기념식 있기 전 일주일에 한 번씩 꼭 참석해 달라는 안부전화를 보내왔다. 참석하기 전까지 전달식이 있는 줄도 몰랐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알찬 기념식에 군수님께서 직접 설계자, 시공자, 감리자에게 감사패를 전달해 주셨다. 오랜만에 감리자와 시공자분도 만나서 반가웠는데 감사패를 전달해 주시며 “내가 요구사항이 너무 많았지? 수고했어요”라는 군수님 말씀이 마음에 울림으로 다가왔다. 손에 받아는 감사패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귀하께서는 남다른 열정과 성실함으로 칠곡군장애인종합복지관 건립에 힘이 되어 주었기에 그 간의 노고에 감사를 표하며 이패를 드립니다. 앞날에 무궁한 발전과 행운이 함께 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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