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설계 저작권’ 공정위 권고 지켜지길…기재부·조달청 거래관행 공정계약 절실

건축설계 지식재산권은 여전히 법의 사각지대?
 공공기관, 법률에 상충·저촉되는 ‘행정규칙’으로
 건축 지식재산권 소유…상위법 위배
“관련 법에 건축설계창작물 지식재산권 귀속 문제
 명시적으로 규정 필요…건축시장 환경 및
 대가기준 개선 위해서라도 건축계 힘 하나로 모아야”

건축설계창작물의 지식재산권은 누구 것일까. 설계창작물을 만든 건축사의 것일까. 아니면 발주기관(공공) 또는 건축주의 것일까. 과거 법원은 건축설계 계약은 위임계약으로서 설계도서에 관한 저작재산권 중 복제권(유형물로 다시 제작할 수 있는 권리)을 양도한 것으로 간주한 바 있다.
건축에 작용되는 지식재산권적 유형은 저작권, 특허권, 디자인권이다. 지식재산권법 체계상 ▲ 저작권법 ▲ 특허법 ▲ 디자인보호법을 적용받는다. 이들 법에서 건축설계창작물의 지식재산권이 누구에게 귀속되는지에 대한 법률적 근거를 살펴보면, 건축설계창작물과 직접 연관된 국내 지식재산권법 체계는 하나같이 ‘건축설계창작물을 창작한 자’를 창작자로 규정하고, 창작자에게 그 권리가 부여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지식재산권 귀속에 대한 법률적 규정은 건축사사무소가 공공건축 설계계약을 체결할 땐 달리 적용된다. 국내서는 발주처가 계약서를 통해 설계도면 저작권을 요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최근 2014년 1월부터는 중앙행정기관·지방자치단체 또는 공공기관장이 건축설계 계약을 체결한 뒤 계약목적물에 대한 지식재산권을 계약상대자와 공동으로 소유한다. 기획재정부 예규인 ‘용역계약일반조건’ 제35조의2(계약목적물의 지식재산권 귀속 등)에 따라 권리귀속이 이뤄지고 있다.

다만, 계약예규는 지식재산권 중 특허권, 실용신안권, 디자인권에 대해 계약의 목적, 개발의 기여도, 기술개발 결과물의 활용 및 사업화를 고려해 계약당사자간 협의를 통해 귀속주체를 정할 수 있도록 특례를 둔다.

◆ 전문가들
  “법률상 강행규정에 반하여
   계약에서 그 사항 정하면
   그 내용은 무효”

사실 여기서 공공의 ‘갑(甲)질’ 논란이 제기된다. 조달청과 지자체 등이 법률에 따른 창작자 원칙을 위배한 행정청 내부 규정인 ‘행정규칙’을 적용해 지식재산권을 귀속하기 때문이다. 이는 엄밀히 따지면 상위법 위반이다. 국내 지식재산권법 체계인 법률(저작권법, 특허법, 디자인보호법)은 지식재산권자를 창작자로 규정하고 있는 데 반해, 행정규칙에서 달리 적용하고 있어서다. 상위법률을 정면으로 거스르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시열 한국지식재산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현행법이 창작자 원칙을 강행규정으로 두고 있는 상황에서 계약(약관 포함) 등으로 이를 달리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며 “계약 등에서 법률상 강행규정에 반하여 사항을 정할 경우 그 내용이 무효가 된다는 점, 행정규칙은 법률의 위임을 통해 법률이 정한 한계 내에서 작용되어야 한다는 점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참조=월간 건축사 7월호 ‘건축담론’>

◆ 2009년 공정거래위원회도
  “건축설계 저작권은
   설계자에게 있다”며
   조달청, 대한주택공사 등
   5개 발주기관에 설계공모 지침서 상
   ‘저작권 귀속조항’ 시정 조치

대한건축사협회도 이런 문제제기를 2013년 4월 조달청에 한 바 있다. 2009년도 공정거래위원회의 건축저작권 관련 시정조치를 근거로 ‘저작권 귀속’이 담긴 ‘건설기술(설계) 용역계약 특수조건’ 개정을 요구하는 공문을 조달청에 보냈으나 당시 이렇다 할 답변을 받지 못했다.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조달청은 “기재부의 계약예규를 따르고 있다”고만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공정거래위원회는 2008년 12월 대한건축사협회의 심사청구에 따라 2009년 “건축설계 입상작의 저작권은 설계자에게 있다”며 “건축설계경기 지침 상 입상작들의 저작권이 발주기관에 귀속된다는 약관조항은 설계자의 저작권을 일방적으로 전부 양도받는 조항으로서 무효다”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정부는 이후 2014년 7월 국가·지자체에서 업무상 작성한 저작물에 대해 저작재산권의 보호를 배제한다는 내용으로 저작권법을 개정했다. 공익 목적으로 예산을 투입해 제작된 저작물로서 납세자인 국민들의 자유로운 이용을 보장한다는 취지다.

이를 두고 발주기관이 건축설계안을 마음대로 수정할 수 있도록 공무원 편의를 위해 만든 법이라는 의견도 크다.
A건축사는 “각 프로젝트마다 다양한 케이스가 있는데, 일괄 무조건 강제로 시행되고 있다. 지자체 권고지침으로 내려오고, 담당공무원들은 이를 따르지 않으면 혹여 감사를 받지 않을까 우려해 계약서에 따른 지식재산권 포기를 요구한다. 지적재산권을 강탈해 가는 것과 다름없다”고 전했다.

◆ 저작권 등
   지식재산권 문제 명확히 해
   건축설계 경쟁력·지속가능성 높여야

건축설계창작물에 대한 지식재산권 귀속 문제는 창작자인 ‘건축사’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건축산업의 경쟁력을 담보하며, 산업혁신을 이끌 수 있는 산업정책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이를 두고 저작권 등 지식재산권 문제를 명확히 해 건축설계 경쟁력·지속 가능성을 높여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크다.
B건축사는 “건축설계창작물 지식재산권에 대한 권리귀속 주체를 계약당사자인 설계자(창작자)가 갖도록 명시함으로써 발주기관이 지식재산권을 갖는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며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 제11조(지식재산권 보호)에 건축서비스 지식재산권 보호 규정이 마련돼 있지만, 현재 지식재산권을 보호하는 법률 근거가 전체적으로 미비하다. 관련 법에 건축설계창작물의 지식재산권 귀속 문제를 명시적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의견을 전했다. 또 “발주처 요구에 따라 설계업무가 이뤄지는 만큼 권리를 요구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가장 보편적이자 효과적 방법인 표준계약서로 지식재산권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C건축사도 “준법과 갑질은 사실 한 끗 차이다. 건축 지식재산권에 대한 인식이 상대적으로 낮은 현실에서 발주기관이 교묘한 방법으로 설계 지식재산권이 귀속될 수 있도록 꾀를 내고 있어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건축계 정보 공유가 필요하다”며 “건축시장 환경 및 건축사업무 대가기준 개선을 위해서라도 건축계가 힘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고 의견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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