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서원 등 국내 9개 대표 서원,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 인정받아 7월 6일 대한민국의 14번째 세계유산으로 등재

조선시대 성리학 교육기관인 ‘한국의 서원(Seowon, Korean Neo-Confucian Academies)’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문화재청은 아제르자이잔 바쿠에서 개최된 제43차 세계유산위원회(6.30~7.10)에서 현지 시각으로 7월 6일 오후 ‘한국의 서원’의 세계유산목록 등재가 최종 결정됐다고 밝혔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14개의 세계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한국의 서원은 ▲소수서원(경북 영주) ▲도산서원(경북 안동) ▲병산서원(경북 안동) ▲옥산서원(경북 경주) ▲도동서원(대구 달성) ▲남계서원(경남 함양) ▲필암서원(전남 장성) ▲무성서원(전북 정읍) ▲돈암서원(충남 논산) 등 총 9개로 구성된 연속유산으로, 모두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돼 있다.
한국의 서원은 세계유산위원회로부터 “오늘날까지 교육과 사회적 관습 형태로 지속되고 있는 한국의 성리학과 관련된 문화적 전통의 증거이자, 성리학 개념이 한국의 여건에 맞게 변화하는 역사적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 OUV)’가 인정된다”고 평가받았다.
문화재청은 지난 ’11년 한국의 서원 세계유산 잠정목록 등재 이후 ’15년 등재신청서를 제출했으나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의 ‘반려(Defer)’ 의견에 따라 이듬해 신청을 자진 철회, 이후 국내외 전문가의 의견을 거쳐 비교 연구를 보완해 9개 서원이 갖는 연속 유산으로서의 논리를 강화해 새롭게 작성한 등재신청서를 ’18년 1월 유네스코에 제출했다. 이후 약 1년 반 동안의 심사를 거쳐 올해 5월 이코모스의 ‘등재 권고(Inscribe)’를 받고, 지난 7월 6일 최종적으로 한국의 서원 세계유산 등재가 결정됐다.
윤대길 건축사(조선 건축사사무소)는 “조선시대 성리학의 산실이자 양반들의 지역적인 사교장이기도 했던 서원은 당시 선비들의 정신적인 부분을 관장하던 교육 기관으로 전학후묘, 전묘후학 등의 정형화된 형태를 갖추고 있다”며 “터에 맞게 자연과 어우러져 소박한 형태로 배치돼 있어, 근면과 검소한 덕을 중시하며 학문을 닦는 선비들의 자세가 서원의 형태에 그대로 반영돼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세계유산위원회에서는 등재 결정과 함께 등재 이후 9개 서원에 대한 통합 보존 관리방안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이에 문화재청은 세계유산 등재 권고사항 이행을 위해 관련 지방자치단체 등과 지속적으로 협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경북 ‘영주 소수서원’(1543, 사적 제55호)_임금이 이름을 지어 내린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 일반적인 서원의 배치가 완성되기 이전의 초기 서원으로, 건물이 비교적 자유롭게 배치돼 있다. (사진=문화재청)

 

▲ 경북 ‘안동 도산서원’(1574, 사적 제170호)_퇴계 이황 선생이 도산서당을 짓고 유생을 교육하며 학문을 쌓던 곳으로, 건축물들은 민간의 집처럼 전체적으로 간결하고 검소하게 꾸며져 있다. (사진=문화재청)

 

▲ 경북 ‘안동 병산서원’(1572, 사적 제260호)_서애 유성룡의 학문과 업적을 기리기 위한 곳으로,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을 담당해 많은 학자를 배출했으며 한국 건축사에 있어서도 중요한 유적이다. (사진=문화재청)

 

▲ 경북 ‘경주 옥산서원’(1572, 사적 제154호)_공부하는 장소인 구인당이 앞에 있고, 제사를 지내는 체인묘가 뒤에 위치한 전학후묘(前學後廟) 형식의 건축물이다. (사진=문화재청)

 

▲ 대구 ‘달성 도동서원’(1605, 사적 제488호)_조선중기 전학후묘의 전형적 배치형식과 강당과 사당의 공포양식 및 담장 구성수법 등에서 건축적 특성을 보여준다. 강당·사당과 담장은 보물 제350호로 지정돼 있다. (사진=문화재청)

 

▲ 전남 ‘장성 필암서원’(1590, 사적 제242호)_전학후묘 형식의 건축물. 정유재란(1597)으로 불타 없어졌으나 인조 24년(1624)에 다시 지었다. 1672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웠다. (사진=문화재청)

 

▲ 경남 ‘함양 남계서원’(1552, 사적 제499호)_낮은 곳에는 강학공간을, 뒤쪽 높은 곳에는 사당을 두어 제향공간을 이루고 있다. 정유재란(1597)으로 불타 없어진 것을 선조 36년(1603)에 나촌으로 옮겨 지었다가 광해군 4년(1612) 옛 터인 지금의 위치에 다시 지어졌다. (사진=문화재청)

 

▲ 전북 ‘정읍 무성서원’(1484, 사적 제166호)_신라 후기 학자인 최치원을 추모하는 사당과 명종 4년(1549) 지어진 신잠의 생사당이 1696년(숙종 22) 병합되며 사액을 받아 서원으로 개편됐다. 전학후묘 형식으로 현재 사당, 현가루, 동·서재, 비각, 명륜당 등의 건물이 남아있다. (사진=문화재청)

 

▲ 충남 ‘논산 돈암서원’(1634, 사적 제383호)_현재 연산면 임리(林里, 숲말)에 창건됐으나, 지대가 낮아 홍수 때마다 서원 뜰 앞까지 물이 차올라 1881년 현재의 위치로 이전했다. (사진=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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