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청명한 밤하늘을 바라보면 수많은 별들이 보였고, 그 별들을 품고 있는 우주라는 미지의 공간은 그 당시 내가 가늠할 수 없이 광활했기에 그저 감상적인 세계로만 인식되었었다.
최근 우주의 기원과 형성과정, 지구의 역사 등에 관심 두기 시작한 것은 순전히 아이 때문이다. 어린 시절의 나처럼 세상의 거의 모든 것을 이루고 있는 우주가 단지 감상하기 좋은 시적 세계로만 존재하기보다는 과학적 사실에 기반하여 객관적인 시각을 갖게 된다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올바른 학습 태도를 형성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였다. 그러던 중 알게 된 내용 중 다소 놀라운 것은 (물론 대부분 건축사들에게는 상식이겠지만) 바로, 인간의 신체 중 96%이상을 이루는 중요한 원소 C,H,N,O(탄소, 수소, 질소, 산소)가 우주를 이루는 중요한 원소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다음은 철학자 앨런 W. 와츠의 표현이다.
“우리의 눈을 통해 우주는 우주를 바라보고, 우리의 귀를 통해 우주는 우주를 듣는다. 우리는 우주가 우주 자신의 장엄함을 인지할 수 있게 해주는 관찰자들이다.”
내가 우주였다니! 내가 나를 보고 있었다니! 상식은 다소 부족했지만, 스스로에게 경외심을 조금 가져도 되지 않나 하는 순간이었다. 온몸에 전율이 돋았다.
주체와 대상의 이분법적 논리에서 벗어나 보여지는 건축의 의미 또한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스태프로 시작하여 오랜 시간을 지나 지금에 이르기까지 건축에 종사하면서 잊지 않고 있었던 가장 선명한 목표이자 소망은, 한 명의 전문직업인으로서 인정받으며 보통의 시민으로서, 든든한 가장으로서, 그리고 지극히 개인으로서의 일상을 지탱하기 위함이었다.
그렇다면 건축사는 누구인가? 무엇을 행하고, 이 사회에 어떠한 존재인가?
법적, 사회적 정의에 더하여 개인의 가치관이 결합된 개인적 정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건축사가 건축에 관한 고도의 전문지식, 감각, 직업윤리, 공감력 등을 필요로 함은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여러 현장과 다양한 사건, 사고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고 나서 어느 순간 나는 건축사가 예술가는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건축사가 반드시 좋은 건축작품으로 회자되지는 않을지라도, 좋은 설계를 하는 전문가로 인정받으려는 노력을 ‘매우’ 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는 다른 듯하다.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오늘날 시민들의 건축을 향한 부정적인 시선에는 건축사들의 집과 도시를 대하는 태도와 인과관계가 있다고 본다. 이에 실망하여 부끄럽고 화나고 도망치고 싶을 때가 너무도 많았음을 고백한다.
우리의 눈을 뜨고 건축과 도시를 통해 각자 스스로 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다. 아름답고, 따뜻하지만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양극화와 불경기에 다들 여유가 없겠지만 역설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더욱 필요한 시절이 아닌가 싶다. 과정에서의 노력과 좋은 결과물에 매진해보자. 그 후에 건축과 도시에 대한 좋은 평가가 있다면 그로써 충분하지 않을까. 나는 아이와 그런 도시를 거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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