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구가 자작나무 문화이며 일본이 편백나무 문화라면 한국은 소나무 문화이다. 한국의 경우, 50여년 전만해도 소나무가 없이는 삶 자체가 불가 하였다. 기둥과 대들보는 물론 서까래, 문짝까지 모든 집의 재료가 소나무이다. 시렁, 뒤주, 도마, 소반, 주걱 등 부엌살림살이부터 말, 되, 절구, 길쌈틀, 물레, 사다리, 쟁기, 벌통, 서안, 나막신 등 생산 및 생활 도구는 물론 죽어서 쓰는 관에 이르기까지 특히 난방과 취사의 연료로써,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소나무와 연관 없이 살 수가 없었다. ▲소나무는 식품과 약용으로도 유효하였다. 속껍질인 백피는 구황식품으로 쓰였는데, 필자도 어린 시절 물오른 소나무 작은 가지를 잘라 끈끈하고 달콤하며 떱떨한 맛의 송기를 먹곤 하였다. 송화 가루는 사람의 기를 보하는 밀과를 만들고 솔잎은 가늘게 썬 뒤 갈아서 차와 죽의 재료가 되었다. 송진은 도료가 되었고 송연(松烟)은 먹의 재료가 되었으며 옹이는 횃불이 되고 튀어나온 복령은 효능 좋은 귀한 약재였다. 어디 이 뿐이던가. 소나무 순으로 만든 술은 송순주요, 솔잎으로 만든 것은 송엽주이며, 풋 솔방울로 만든 것은 송실주라 하며, 옹이를 넣은 것을 송절주, 동짓날 밤 솔뿌리 넣은 술 단지를 소나무 밑에 묻었다가 이듬해 가을 꺼내먹는 술은 송하주(松下酒)였다. 이러한 술은 소나무 특유의 향취뿐 아니라 약리효과도 탁월하다. 일제 말 항공유가 부족한 일본은 큰 소나무 밑동을 톱으로 10여 층 씩 상처 내어 송근유를 뽑아내기도 하였다. ▲소나무는 신라시대 화랑도들도 식생에 노력을 경주하였고 이후 조선시대에는 송충이구제와 식목에 많은 경비를 지출하였다. 경국대전 등 법령을 통하여 서울의 4대산을 비롯한 수백 곳을 풍치와 군선의 조선 및 사방 등을 위하여 금산 내지 봉산 조치를 하였다. 또한 숯 굽는 산과 땔감나무 심는 곳도 따로 지정하여 관리하였다. 경포 한송정 일대와 수원의 노송지대 등도 보호구역이었다. ▲소나무는 한민족의 정신이며 표상이다. 애국가의 가사 이전에도 십장생 중 하나요, 윤선도의 오우(五友) 중 하나이기도 하다. 소나무는 절개와 지조를 표상하여 성삼문을 비롯한 충신과 선비들의 시에 나타나고 대나무와 함께 혼례상을 장식하였다. 홍만선은 산림경제에서 ‘집주변에 송죽을 심으면 생기가 돌고 속기를 물리칠 수 있다’하였고 추사의 세한도는 정제된 필체로 문인화의 백미이다. 이런 소나무가 서울올림픽을 기화로 조경수로서 도심으로 진출하였다. 최근 새로 지은 아파트 남쪽 정원의 거실 쪽에 바짝 심어진 소나무는 4-5개층의 주거공간에 가뜩이나 짧은 겨울햇살을 막고 있어 원성을 사고 있다. 조경기술사의 의식 없는 붓대가 한민족과 함께 한 소나무를 욕보이고 있는 현실이 부끄럽고 한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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