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건축을 만들지만 그 이후 건축은 우리를 만든다.” 1943년 10월, 영국 윈스턴처칠이 폭격으로 폐허가 된 영국의회 의사당 앞에서 다시 지을 것을 약속하면서 행한 연설 내용 중 한 구절이다.
건축설계 전문가인 건축사는 건축주의 요구에 맞춰 건축물을 창조·완성하지만 그 건축물을 이용하고 거주하는 사람은 완성된 건물 환경에 의해 지배받게 된다. 싫든 좋든 완성된 건물에서 적응하며 살아야 한다. 쾌적하고 좋은 환경은 집주인뿐 아니라 이용하는 사람이나 시민들에게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건축은 우리의 생활과 사고방식을 바꾸기도 한다.
1980년대 산업화 시대에는 단순히 기능 위주의 건물이 지어졌다. 특정 건물 외에는 삶의 멋이나 조화로운 환경 따위에 관심이 없었고, 업무나 거주 편의를 위한 기능성에 집중했다. 그 당시 요즘 같은 생활잡지나 광고, 드라마에 나올 만한 건물도 없었고 스타 건축사도 없었다. 그때 자크 에르조와 피에르 드 무롱이 2008년 중국 베이징에 설계한 바구니 모양의 올림픽 경기장이 있었다면 대 히트작이 되었을 것이다. 요즘에는 첨단 컴퓨터 기법에 의존하여 세계 곳곳에 초기 몽상가들이 꿈꾸어 왔던 유리탑이나 소라 모양의 집, UFO 형태의 빛나는 아이콘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은 1920년대 일어난 근대적 건축운동인 초기 모더니즘의 이상주의가 남아 있지 않다. 한때 건축계를 지배한 자본주의에 대안을 제시할 만큼 대담했던 전위파(20세기 초 프랑스와 독일을 중심으로 자연주의와 고전주의에 대항하여 혁명적인 예술경향을 주도했던 그룹)도 없다. 100년이 지난 지금은 세계 곳곳에 유명 건축사들이 침체된 도시를 살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나라별로 또는 각 도시 지자체별로 설계 공모를 통해 40년 전에 볼 수 없었던 독특하고 개성적이며 기념비적인 건물들을 짓고 있다. 유명 건축사는 아니더라도 경험 많은 건축사 그룹들이 설계공모를 통해 지역 주민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침체된 환경에 활력소를 제공하고 있다. 그 지역 역사성과 지역성을 되살려 도심 환경을 재생한다거나 복원하여 많은 관광객을 끌어 모으는 역할과 구실을 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에스파냐 북부’다. 쇠락하던 도시였던 빌바오에서 1990년 후반부터 호화로운 건물을 신축하는 붐이 일어났다. 오스카르 니에메예르는 브라질에 동적이고 힘찬 건물을 세웠다. 요른 웃존이 설계한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는 오스트레일리아 대륙 전체의 건축 아이콘이 됐다. 하지만 건축물이 사람들에게 인기 높은 취미거리가 되고 건축사가 지역을 회생시키는 일종의 구세주가 된 것은 프랭크 게리가 빌바오에 은백색의 구겐하임 미술관을 선보인 때부터 시작됐다. 그때 빌바오시는 시의 모든 것이 침침하고 황폐했으며 철강업과 조선업이 내리막길에 있었고 공장이 문을 닫아 수천 명이 일자리를 잃어가는 때였다. 하지만 빌바오시 당국은 몰락한 중공업의 자리에 문화산업이 계승되도록 하자는 결론을 내렸고, 그곳에 프랭크게리의 미술관 건물이 생기면서 침체된 도시가 새로운 변화의 상징, 새로운 시작의 신호탄이 됐다. 이처럼 멋진 건물은 그 도시를 살리는 역할을 톡톡히 하게 된다.
건축물은 이제 유행이 되고 있다. 사람들은 삶의 여유가 생겨 해외여행을 가더라도 유명 건축물을 찾는다. 이라크 바그다드 출생 하디드가 설계한 건물을 보았다거나, 2005년 노먼 포스터가 설계한 러시아 타워나 렘 콜하스가 설계한 중국 베이징 중앙텔레비전 CCTV를 봤다고 자랑한다.
우리에게도 이처럼 스타 건축사가 있는가? 전국 곳곳에 멋들어지게 지어지는 기념비적 건축물에는 시공사의 광고문만 보이지 그 건물을 누가 설계했는지 이름조차 없고, 심지어 건물 준공식장에도 VIP로 초대 받지 못하고 있다. 참으로 서글픈 직업 중 하나다.
그러나 우리 건축사 헌장에 나와 있듯이 건축사는 조형 창작하는 예술인으로서 창의력을 발휘하여 건축문화 창달에 이바지하고 국민의 쾌적한 생활공간과 환경 개선을 위하여 건축사 업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그 사명을 다 해야 한다.
비록 우리는 피터 아이젠만, 프랭크게리, 필립 존슨, 노먼 포스터 같은 유명 건축사가 아닐지라도, 또 우리에게 마돈나나 브래드 피트, 그리고 방탄소년단 같은, 공항대합실에서 아우성치는 극성팬들을 불러일으킬만한 스타건축사가 없더라도, 우리가 설계하는 건축은 생명이 없는 건물이 아니라, 삶의 흔적이 있어야 하고 나름의 철학이 스며든 건축물이 되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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