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석의 건축정책 논단

▲ ▲ 박인석 논설위원(대통령소속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 명지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교육부가 1월 ‘학교시설 환경개선 5개년 계획’을 발표한 데 이어 3월 27일 5개년 계획의 핵심인 ‘학교공간혁신사업’의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전국 1,250개 학교의 교실들과 교사 500동을 리모델링하거나 개축하겠다는 내용으로 예산이 3조 5천억 원에 이른다. 교육부 발표에 따라 각지 교육청마다 추진 준비에 분주한 모습이다.

학교공간혁신사업의 핵심은 서울시 교육청이 초등학교 교실을 중심으로 2017년부터 진행 중인 ‘꿈을 담은 교실 만들기(꿈담교실)’ 사업을 전국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유은혜 장관과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이 함께 꿈담교실 사업 현장을 방문한 사진도 크게 보도되었다.

그간 학교건축은 우리 사회 건축 현실 비판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주인공이었다. 옹벽·담장·철망을 두른 채 판에 박은 듯 지어지는 학교를 두고 ‘획일적’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군대막사나 교도소에 비유되는 일도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다양한 설계’를 내걸며 동원되곤 하는 원색적 색채와 장식요소들로 유치함과 번잡함까지 더해지기 십상이다.

학교건축이 이런 문제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폐쇄적인 설계 발주행정 때문이라는 지적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학교건축은 지금까지 일반 공공건축들의 설계발주방식에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설계되어 왔다. 1960년대부터 표준설계도로 설계되던 학교건축은 1998년부터는 7차 교육과정에 대응해야 한다는 ‘특수한’ 사정을 이유로 기본계획을 먼저 수립하고 설계용역은 실시설계만을 입찰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었다. 기본계획을 수립하는 일은 ‘교육시설 전문가들’에게 수의계약으로 주어졌는데 모 기관에서 한 해에 100건 이상을 수행했다는 소문이 악명 높게 전해지고 있다. 이후 민간참여사업(BTL) 시기를 거쳐 현재는 설계공모 방식으로 시행되고 있는데 여기서도 비슷한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국토부가 고시한 건축설계공모지침의 ‘심사위원 사전공개’ 등을 따르지 않고 있으며 심사위원의 대부분을 교육 전문가와 공무원으로 구성하여, 건축설계공모 심사위원에서 설계 전문가가 소수라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폐쇄적 설계발주방식이 학교건축을 발전시키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것은 건축계의 공공연한 상식이 된 지 오래다. 설계공모 심사를 둘러싼 비리에 대한 소문도 무성하다. 그러나 학교건축 설계의 폐쇄적 운영은 여전하다.

▲ 꿈담교실 현장을 방문한 유은혜 교육부장관과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사진=교육부

서울시 교육청의 새로운 시도가 주목을 끌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설계발주방식의 변화를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꿈담교실 사업의 핵심은 잘 알려져 있듯이 ‘좋은 설계자’다. 교실 당 공사비 5천만 원에 설계비는 학교당 교실 5개 정도를 묶어도 수의계약 규모를 넘지 못하는 수준이었으니 통상의 설계발주방식으로는 좋은 설계자들에게 일을 맡기기는 어림없는 일이었다. 이러한 여건 속에서 꿈담교실이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사업을 총괄하는 총괄건축가를 필두로 학교별 설계자를 우수한 건축사들로 추천하고 선정한 특별한 ‘설계자 선정 방식’이었던 것이다. 

꿈담교실을 전국적으로 확대하겠다는 교육부의 계획에도 당연히 이러한 새로운 설계자 선정방식이 담길 것이 기대되었다. 서울시 교육청 꿈담교실 사업의 성취를 인정하고 이를 전국에 확대하려는 정책사업이라면 그 성취 요인이 무엇인지를 살피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3월 27일 공개된 학교공간혁신사업의 내용은 매우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이제까지 학교건축이 왜 문제였는지에 대한 성찰과 이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은 보이지 않는다. 이래서야 혁신은커녕 이제까지의 문제를 확대 재생산하겠다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거듭하거니와 이제까지 학교건축이 비판을 받고 있는 이유, 즉 학교건축이 좋은 건축이 되지 못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폐쇄적인 설계발주 절차다. 좋은 설계자 선정보다는 ‘학교건축의 특수성’을 내세운 ‘교육시설 전문가들과 교육전문가들만의 리그’로 짜인 설계절차가 그 주범이다.

이번의 학교공간혁신사업 추진계획이 실망스러운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사용자 참여설계를 주제로 ‘퍼실리테이터’가 사용자 및 설계자를 지휘하며 설계과정을 주도하도록 하고 있다. 퍼실리테이터는 건축교육전문가(교수), 건축사, 공간디자이너, 담당공무원, 문화기획가 등이 담당토록 할 계획이라 한다.

전문가들 자문이나 사용자 참여설계가 문제라는 것이 아니다. 건축설계과정에서 사용자참여는 당연한 일이다. 서울시 꿈담교실 사업에서도 설계자들이 해당 학교 학생, 교사 등 사용자들의 공간이용 행태를 조사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일이 중요한 비중으로 수행되었다. 더 많은 참여를 위해 참여설계 과정을 강화한다면 좋은 일이다. 정작 문제는 ‘설계’를 건축사가 아니라 학교건축 전문가나 교육전문가들이 주도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설계 전문가인 건축사는 이들 ‘전문가’들의 지휘 아래 설계도를 제작하는 용역업자일 뿐이다.

학교건축은 늘 이런 식이었다. 건축설계 전문가보다는 교육전문가가 우선이었다. 이유는 ‘학교건축의 특수성에 대한 이해의 중요성’ 때문이다. 한국의 건축사들은 졸지에 학교건축의 특수성도 제대로 이해 못하는 비전문가로 취급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그토록 특수성과 전문성을 강조해온 학교건축이 어째서 가장 많은 비판을 받고 있을까. 특수성과 전문성을 제대로 담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좋은 설계자’ 선정에 소홀해서 빚어진 일이라는 지적을 이제 인정해야 하는 것 아닐까. 

교육부가 학교공간혁신사업에서 핵심 요소로 삼는 ‘학교공간혁신 촉진자’, 즉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는 사용자, 관리자, 건축주 등 관계자들의 필요나 요구를 설계에 반영하는 참여설계과정 촉진자이자 조력자를 뜻한다. 이는 전통적으로 건축설계자가 당연히 수행해온 업무인데, 영국 등에서 참여설계의 필요성을 각별히 강조하면서 새로 성립한 개념이다. 퍼실리테이터의 역할은 관계자들과 설계자간의 의사소통을 지원하는 것이다. 가능하다면 설계자가 직접 이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가장 좋다. 서울시 꿈담교실에서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만일 설계자 선정 전 기획단계에서 퍼실리테이터의 역할이 필요한 등의 이유로 설계자가 아닌 사람이 이 역할을 맡는 경우라면(꼭 그래야 할 경우가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지만), 기획단계의 업무에만 국한하고 설계자 선정 이후에는 설계자가 그 역할을 수행하도록 해야 한다. 퍼실리테이터가 필요한 이유는 ‘좋은 설계’ 때문이고 좋은 설계는 좋은 설계자에게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좋은 설계자’ 필요성에 원론적으로 동의하면서도 수도권 이외 지역에서 좋은 설계자 선정이 쉽지 않다는 현실적 어려움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방에서의 우수인력 부족 문제는 비단 좋은 설계자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좋은 퍼실리테이터 역시 부족하기는 마찬가지다. 아니 수십 년간 건축사 자격제도로 배출하고 관리해온 설계전문 인력보다 훨씬 부족할 것이 뻔하다. 부족한 퍼실리테이터를 몇 차례 교육으로 양성한다는 교육부의 계획도 문제다. 이는 퍼실리테이터를 전문적 직능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얘기이니 이들이 설계를 주도하도록 한다는 것은 더욱 말이 안 된다. ‘좋은 설계자’가 부족하다면 사업의 양과 속도를 조절하거나 설계자가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여건을 고민하는 것이 마땅하다. 우리 사회가 보유하고 있지도 않은 퍼실리테이터라는 새로운 인력을 졸속으로 ‘양성’해내려는 무모함 대신에 말이다.

교육부와 교육청이 학교공간을 진정 혁신하려 한다면 무엇보다 좋은 설계자를 선정하는 일에 노력해야 한다. 수의계약 규모의 소규모 설계사업이라면 역량 있는 설계자 등 우수 설계자들의 참여방안을 고민해야 할 것이고, 설계공모 대상 사업이라면 좋은 설계 선정을 위한 공모절차와 심사 풍토 혁신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무엇보다 ‘좋은 설계자’가 우선이다. 좋은 설계자가 있어야 좋은 학교공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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