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설계는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부터 시작되었을 만큼 그 역사가 유구하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국제현상에는 기라성들을 제치고 무명의 젊은이인 덴마크의 우촌이 당선되었다. 그것도 심사대상에서 제외되었던 것을 당시 심사위원 한분의 재심요청으로 구제된 것이었다. 이후 건축 과정에서 지붕의 쉘 구조는 당시 기술로 해결이 어려워 6년을 허비하였고, 유리벽을 설계하는데 4년이 걸렸다. 공사비는 당초예산의 10배가 넘었고, 설계자는 그로인해 공사도중 쫒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준공 이후 캥거루로 상징되던 호주를 바꿔놓으며 수많은 관광객이 쇄도하는 이 건물을 설계자인 우촌은 끝내 보지 않았다. 당선작에 대해 낙수장으로 유명한 거장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이 서커스 텐트는 건축이 아니다’란 혹평을 했지만 완공 후 프랭크 게리는 ‘시드니 오페라하우스가 아니면 구겐하임 빌바오는 없었다’고 했다. ▲ 한국에서도 새천년에 들어서면서 현상설계는 BTL, 턴키와 더불어 공공기관의 발주방식으로 고착화 되었다. 이러한 현상만능주의의 문제점은 심사의 공정성과 더불어, 발주처의 의무는 도외시한 채 권리만 행사하는 것, 구조, 시공, 토목, 조경 등 건축계획 외적인 요소들에 대한 동일 수의 심사위원이나 배점 그리고 CG를 요구함으로써 야간조명이나 햇빛반사로 건물이 가장 멋지게 표현되는 유리건물을 양산하게 되는 점을 꼽고 있다. 이는 에너지 효율을 떨어뜨리고 공사비의 증대를 가져오는 요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 최근 포항시의 도서관 현상조건에 당선작이 공사예정가를 상회할 경우, 해약은 물론 업무방해로 사법처리한다는 문구로 건축계가 흥분하고 있다. 공무원들은 그간 예산 초과된 건축물을 완성하는데 애로가 많아 이를 방지하고자하는 고육지책이라고 한다. ▲ 필자가 아는 교회는 현상설계 시 공사예산을 알려주었고 당선자도 충분히 그에 맞출 있다하여 용역을 체결했는데, 납품 시 내역서는 두배가 되었고 아무리 조정해도 예산의 1.5배에 달하였다. 낙찰가도 1.4배에 달해 기로에 섰을 때, 구조변경을 통해 예산의 110%에 시공해주겠다는 모 건설사의 꾐에 빠진 현장은 시공자의 부도와 횡령, 부실시공으로 곤혹을 치르고 있다. 무책임한 건축사에게 그 원인이 있다. 하지만 당선무효조건만으로도 건축사는 형사처벌 이상의 금전적, 정신적 고통으로 받을 것인바, 재판정에 세운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며 건축사를 모욕하는 처사이다, 더구나 보이지 않는 지질, 폐기물까지 책임지라면서. 차제에 작품을 살 것인가, 예산에 충실할 것인가에 대한 구분과 더불어 그간 건축사의 짐으로 작용한 CG 대신 종이 모형 등 대폭적인 현상제출도서의 간소화와 건축계획 중심의 현상제도 개선을 추진, 제도화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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