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들어간 서점에서 몇몇이 복작복작하게 서서 책을 읽고 있는 매대가 눈에 띄었다. 경제 및 경영 서적 구역이었다.
매대에는 온갖 보색 대비로 이루어진 책들이 빼곡히 놓여 있었다. 표지의 자극적인 색감과 강한 폰트로 눈길을 사로잡으려고 안달인 책들이었다. 그 중에 어떤 이가 들고 있는 부동산 서적을 따라서 들고 훑어보니 건물주를 꿈꾸는 이들을 사로잡을 만한 술술 읽히는 내용이었다. 저자가 주변에서 보았던 성공사례 몇에 저자 자신의 성공사례 몇을 덧붙인 목차만 보아도 나조차도 당장 내일이라도 건물주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례중심으로 쉽게 설명을 잘 해놓은 책이었다. 그러나 뒤로 갈수록 내용이 기가 찼다. “설계비 및 감리비는 건축연면적에 평당 10만 원 정도로 계산하고, 인프라 인입비 및 부대비용은 총공사비의 약 10%로 잡고 계산한다”, “설계를 제대로 하려면 먼저 가설계를 여러 곳에서 받아봐야 한다”라는 내용이 마치 진리인양 반복적으로 쓰여 있었다.
가설계에 대한 내용을 보니 오히려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까지 했다. 계약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으로 주출입구와 주차동선을 고민하였을 다수의 건축사들에 대한 동정심이 일었다. 그 마음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건축이라는 분야의 전문가이자 회사를 이끄는 대표라면 자신의 업무에 따른 대가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히 요구해야 한다. 변호사, 의사들과는 직접적인 변호나 치료 없이 대화만 하는 것으로도 시간당 요금을 지불해야 하는데, 같은 ‘사’자 전문가인 건축사도 그 정도의 자존감을 가져야한다고 생각한다. 애당초 ‘가설계’라는 단어가 일상적으로 통용된다는 사실이 얼마나 자존심 상하는 일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가설계라는 것은 없다. 설계는 원라인이든 투라인이든 도면화와 동시에 존재하는, 만질 수는 없지만 현실화될 수 있는 씨앗을 만드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가설계든 실시설계든 간에 클라이언트들은 단순히 매대에 올려놓은 여러 공산품들 중 하나를 사는 것이 아니라, 건축사가 몇 년 동안 쌓아온 지식과 경험을 잠시 빌려 자신이 원하는 바를 갖는 것이다. 설계가 나오기까지의 하루이틀정도의 시간이 무엇이 그리 대수냐, 그 정도는 해줄 수 있는 것 아니냐 라는 것도 어불성설인데 ‘가설계’라는 것은 사실 한 전문가가 그 자리로 오기까지 쌓아온 지적 재산을 토대로 파생된 제품을 훔치기 위해 생겨난 단어인 듯하다.
이러한 서적들에 대한 강경한 대응책을 마련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예비 건축주들에게 ‘가설계’라는 단어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 알리고 홍보하는 것은 지금부터도 할 수 있다. 업무에 대한 대가를 당당히 하는 사업가로서의 건축사가 되는 것이 전문성에 대한 존중이고 예의이다.

저작권자 ©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