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휘 논설위원(디디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대표, 서울시 공공건축가)

4년 전 일본 나가사키시에 있는 헨나호텔은 세계 최초로 사람 대신 총 243개의 로봇을 직원으로 채용하면서 세계 첫 무인호텔로 기네스북에 올라 화제를 모았다. 일본의 인구감소에 따른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서 2021년까지 로봇호텔을 100개로 늘리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접수나 운반 등 대부분의 업무에 로봇을 배치했는데 4년간 운영해본 결과 로봇의 업무효율은 기대 이하였다. 프런트 데스크의 로봇은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고, 짐을 옮기는 로봇은 서로 충돌하고, 객실에 비치된 인공지능 로봇은 투숙객이 자면서 코고는 소리에 반응해 엉뚱한 말을 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로봇을 수리하고 관리하는 인력을 더 많이 투입하면서도 고객의 불만은 늘어감에 따라 로봇을 절반 이하로 줄이기로 한 것이다. 

올해 4월 4일 현대카드는 인공지능(AI) 왓슨(Watson) 기술을 접목해서 자동응답상담원을 도입했다고 밝혔다. 사람 대신 인공지능에게 상담원 역할을 맡긴 것이다. 고객과 상담을 진행할 정도의 ‘지능’을 갖추었다고 하는 데 전체 상담 건수의 약 30% 정도를 처리할 예정이라고 한다. 

비슷한 시기에 헨나호텔은 인공지능을 줄이기로 했고 현대카드는 인공지능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두 회사가 인공지능에 거는 기대는 현시점에서는 서로 반대방향으로 보인다. 다시 4년 뒤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성공과 실패가 반복되더라도 인공지능에 대한 투자는 계속 되면서 인공지능의 활용도는 장기적으로는 점점 늘어날 것이다.    

흥미롭게 봤던 미국드라마 중에 ‘스타트렉 보이져’ 시리즈가 있다. 극 중 인물(?) 중에 AI에 해당하는 두 명의 배역이 있는데 로버트 피카르도가 맡은 홀로그램 의사(닥터)역할과 제리 라이언이 맡은 과학장교(세븐 오브 나인)역할이다. 닥터는 홀로그램이라서 완전한 인간성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인간과 비슷한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보여준다. 세븐 오브 나인은 원래 인간이었는데 지구를 떠나 다른 행성으로 가서 일종의 AI와 결합되며 사이보그 같은 존재가 됐다. 인간의 감정과 행동양식은 사라지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기만 해서 기계와 같은 말투와 행동양식을 보여준다. 재미났던 것은 항해 도중 만나는 많은 사건들 속에서 닥터와 세븐 오브 나인은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오직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 소위 컴퓨터와 같이 데이터나 계산으로만 모든 판단과 결정을 내리려고 한다. 그때마다 함장 제인웨이는 이 둘을 이해시키지는 못하지만 우정, 협동, 희생, 사랑에 바탕을 둔 결정을 내린다. 닥터와 세븐 오브 나인은 인간성이나 인격을 이해하지도 배우지도 못한다. 다만 함장의 결정을 따르면서 인간성이라는 것은 뭔가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증명된 합리성이나 계산의 결과를 뛰어 넘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 스타트렉 보이져

이 드라마는 우리가 당연시 해온 인간성이라는 것에 대해서 고찰하게 해준다. 기계에 수많은 빅데이터를 넣고 자기학습을 통해서 최상의 합리성을 갖춘 인공지능(AI)이 만들어지더라도, 이들이 결국 배울 수 없는 부분은 인간은 비효율적이고 비합리적이더라도 다른 관념(우정, 희생, 감정 등)을 통해서 진화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90년대에 네덜란드에서 MVRDV는 데이터스케이프(Datascape)라는 개념을 선보였다. 과거의 건축이나 도시계획이 바라보던 관점 중에서 작가들의 개인적이거나 감상적인 판단을 배제하고, 보다 객관적인 정보들을 가지고 설계를 진행하면 좀 더 합리적이고 최적화 된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추진했던 방법론이었다. 이후 건축계에는 계산기나 엑셀을 통해서 수치화해서 보여주는 다이어그램들이 유행했다. 다양한 통계자료들을 건축설계에 도입하는 시도들이 이제는 일반화되었고 지금도 발전되고 있다. 하지만 통계나 자료를 가공하고 판단하고 분석하는 몫은 여전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더라도 객관화된 혹은 수학적인 디자인 방법론으로 발전되는 것은 가능하지 않았다. 단지, 설계에 있어서 좀 더 객관적으로 분석하기 위한 태도의 변화는 이끌어 냈지만, 데이터나 변수의 조정으로 설계를 자동화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다시 말해서, 데이터스케이프라는 설계방법론은 지금 말하는 빅데이터 개념을 활용하고자 했던 시도였으나, 현실에서 접목이 가능한 혹은 발전이 가능한 부분은 역시나 과학적이거나 수학적으로 검증이 가능한 지원영역(주로 에너지절약)에서만 급속히 발전했다. 사실 데이터스케이프 이전부터 현재에 이르기 까지 설계를 자동으로 만들어 내기 위한 시도는 계속되어 왔다. 쉬운 예로 건축사시험문제를 풀어내는 것은 인공지능이 오히려 정답률이 높을 것이고 더 나아가서 결국 기능적으로 우수하고 에너지환경적으로 더 완벽한 디자인을 해내는 것도 인공지능이 인간을 앞서나갈 수도 있다. 

그렇다면 완벽하게 우수하고 결점이 없는 인공지능이 제시한 디자인이 다소 모자라 보이고 결점이 있는 인간이 만들어내는 디자인보다 항상 앞서는 것일까? 
비록 소설이지만 스타트렉 보이져는 극단적으로 발전된 미래세계에서도 인간성의 본질과 인류가 살아가는 가치는 변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홀로그램 닥터와 인간이 합성된 사이보그 세븐 오브 나인은 아무리 최적화된 합리적인 대안을 가졌어도, 인간성을 가진 함장 제인웨이의 불합리한 듯 보이고 비이성적인 감정까지 고려하면서 문제를 해결해 내는 것을 이기지 못한다. 왜냐하면 인간이 결정하는 판단의 근거와 잣대는 지금 당장 계산 가능한 이익만을 목표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건축학과는 동일한 잣대를 가르친다. 주변과 관계에 대한 고려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왜냐하면 건축설계는 인류가 진화해온 방식 그대로의 태도 위에서 삶을 지속하는 방법을 토대로 하기 때문이다. 침팬지는 작은 포유류를 잡는 동안은 협동해서 집단으로 사냥을 하지만 사냥을 마치면 전리품을 공정하게 나누지 않고 힘센 침팬지들이 거의 독점한다고 한다. 오직 인간만이 전리품을 공유하는 상호의존적인 협력을 통해 집단화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는 것을 인지한 유일한 동물이다. 다시 말해, 진화적으로 인간은 당장의 수학적 계산으로 보면 비합리적인 것 같아도 ‘협력’을 통해서 이룬 문화공동체의 바탕을 통해 ‘발전’을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동물이다.

인간은 특정한 경우에 항상 특정한 방식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상호 협력하는 문화집단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매번 다른 결정을 내려서라도 집단을 위한 장기적 이익을 선택한다. 인공지능은 발전할 것이고 전통적인 설계영역의 기술적인 부분을 대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이 진화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상호의존을 하기 위해서 선택해온 양보, 헌신, 배려를 통한 도덕적 협력은 수학적 계산이나 빅데이터의 조합으로는 예측이 불가능한 인간의 고유특질이다.

도시는 인간이 모여 사는 곳으로 인간이 진화해온 역사의 축적물이다. 이 도시를 구성하는 요소인 건축은 당연히 인간이 진화해온 방식 그대로의 태도로 작동한다. 인간이 아니라면 어떤 대리인도 주변과의 도덕적 맥락, 불합리한 감성적 결정, 역사와 관계된 비경제적 선택을 통해 이루어지는 건축설계의 불합리한 듯 보여지는 선택을 대신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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