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준봉 논설위원(한건종합건축사사무소 대표건축사, 중국 심양건축대학교 교수, 공학, 법학박사)

지난 하노이 회담은 ‘협상실패’가 아니고 ‘진행 중’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차라리 서로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의 최종목표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이다. 그러나 북한을 무장해제하는 방식의 비핵화는 불가능하다. 우리는 수습 불가능한 파국을 경계해야 한다. 미국의 표현대로 한미동맹은 여전히 한반도 평화와 안전의 린치핀 (Linchpin, 핵심축)이다. 통일을 누가 원하는가?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은 진실로 원하는 걸까? 자국의 이익을 따라갈 뿐이다.

통일된 한반도는 지나치게 높은 수출 주도형의 취약한 경제구조를 가진 한국경제에 새로운 희망을 주며, 크게 보면 유럽과 아시아 대륙을 아우르는 유라시아 경제 연합의 변화·발전을 유도한다. 독일이 통일되지 않았다면 유럽 통합이 불가능했듯 동북아 평화와 새로운 유라시아 시대는 한반도의 통일이 토대가 돼야 가능하다.

지난달 남북통일을 좀 더 가까이 느끼고자 북한 동포가 활동하는 단동과 신의주지역에서 북한과 실질적인 교류를 하는 사업가들을 만나게 됐다. 막연히 북한을 바라보거나 탈북자의 시각에서 북한을 바라보다가, 냉정하게 북한 내부의 소리와 현재의 움직임, 그리고 미래의 가능성을 그 중심에서 디테일하게 볼 수 있는 기회가 됐다. 특히 대한건축학회 김대익 남북교류위원장 일행과 함께한 것은 큰 의미가 있었다. 우리나라는 건축 3단체가 국내에서 서로 다른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만 대외적인 사안은 서로 협력해 중복 투자를 피하고 관련 정보를 공유해 ‘건축외교’를 능률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

◆ 대한건축사협회 남북교류협력위원회 
   북한접경지역에서 북한 관련 실무자들과 회담 가져

이번 북한사업 관련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얻은 첫 번째 소득은 한·중 간 화해와 협력이다. 처음에는 재중동포-조선족의 역할이 지대했던 것처럼, 지금 북·중 관계와 남북관계의 역할자로서 북한 화교의 역할이 두드러짐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들은 최근까지 대(對) 중(中) 사업을 지속하고 있으며, 북한의 동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들의 말을 빌자면 “지금 북한은 과거처럼 아사자도 없고 곡물가격이 안정되어 있다. 집(아파트)거래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부유층과 중산층이 많이 생겨나고 있으며, 휴대폰 보급이 날로 늘고 각 시장(장마당)이 활성화되어 있다”고. 그들은 이런 이야기도 했다. 제재국면을 맞이한 북한에 대해 “현재 북미관계가 어렵지만 이 어려움의 시간이 오히려 급격한 북한의 변화를 완충하고 거대 자본의 무분별한 북한 투자를 제어함으로써 안정적인 북한의 발전과 긴장완화를 동시에 이룩하고 있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지난해 중국 정조우시에서 북한 건축 관련 대표와 함께 만난 것만으로도 분단한국 건축역사에 뜻깊은 사건이었다. 당시 남북교류위원회 자문위원 자격으로 배석했는데, 조선건축가동맹 심영학 위원장은, 북한 중앙통신이 그의 2019 평양국제가구 및 건재부문 과학기술전시회 축하연설 내용을 보도할 정도로 북한 건축계의 실세이다.

▲ ▲대한건축사협회 남북교류협력위원회 중국 단동 북한 접경지역 방문회의

◆ 북한 조선건축가동맹 심영학 위원장과 
   건축 관련 실제적 첫 만남 가져

당시 북한의 심 위원장은 남쪽의 경제·사회 발전에서 거둔 커다란 성취를 높게 평가하면서, 최근 몇 년 새 가까워진 남북 화해무드에 건축사들도 함께 교류하고 협력하자고 말했다. 단독 회담 중 그들은 이런 말도 했다. “우리 공화국은 새로 지은 평양 통일거리의 아파트를 분배하는 데 그 1순위가 과학자이고, 2순위가 교수입니다” 북한의 변화상을 엿볼 수 있었다. 또한 중국건축학회 초청 리셉션 디너에서 조선건축가동맹 심영학 위원장과 김강철 국가설계총국부원이 같은 자리에 배석했는데, 김강철은 유학생 신분으로 중국 광조우에서 건축석사를 이수한 건축전문가이다. 그간 우리가 탈북자 중심의 시각으로 들었던 북한건축 수준이 북한 내부의 시각으로도 상당히 발전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비록 짧은 첫 만남이었지만 상호 간 교감도 깊었고, 허심탄회한 대화도 나누었던 좋은 기회가 되었다. 실질적인 남북건축 교류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자주 만나고 좀 더 구체적인 교류방안을 모색해 상호간 실질적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준비하고 대비해야 하겠다. 이를 위해 불투명한 현 상황에도 불구하고 선제적 관점에서 건축계가 할 일이 있다.

우선 지구상에 남은 거의 유일한 생태계 보전 지역 DMZ를, 긴장완화를 위한 평화공원으로 조성하는 일이다. DMZ를 완충지역으로 보존하면서 휴전협정이 종전 또는 평화협정으로 전환되면 북한군은 개성이북으로, 남한군은 파주 이남으로 철수해 북방한계선부터 개성까지와 남방 한계선부터 파주까지를 자연환경생태 보존 중심으로 새롭게 계획할 수 있다.

▲ 김일성종합대학 도서관 리모델링 협의_당시 평양건설건재대학교 교수들과

◆ 제재국면에서 우리 한국이 할 수 있는 일 있어
   ① DMZ평화마을 조성
   ② 임진강변 남쪽 개성공단인 ‘파주 평화공단’ 조성

최신 기술과 노하우를 가진 남한의 지원으로 북한의 허허 벌판에 새롭게 인프라를 구축해 나가 체계적인 북한 인프라 개발을 선행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실향민을 위한 남북한 공동주거 시범마을을 계획하거나 DMZ를 배후로 생태도시를 계획하거나 평화도시를 만들고 남북 양측이 완충지대에 직접 투자를 하는 방법도 있다. 민통선은 단계적으로 북상해왔는데 이번 기회에 조금 더 북상시켜 현재 민통선 내 토지활용활성화에 따른 일자리 창출 등을 동시에 겨냥할 수 있다.

둘째로는 휴전선 남쪽지역 임진강변에 제2의 개성공단을 만드는 안이다. 중단된 개성공단의 재개가 시급하지만 현재의 제재국면 하에서는 남측에 새로운 경협 공단을 확대하는 것이다. 경기도 파주 장단면 일대에 남북경협 기업 중심의 산업단지 조성 방안으로 기본적으로 개성공단과 비슷하게 하면 된다. 남한의 자본·기술과 북한의 노동력을 결합하는 형태를 기본으로, 파주 임진강변 위화도나 황금평과 유사한 모래톱 자연섬에 공단을 건설하면 남한 지역이긴 하지만 민통선과 임진강으로 차단된 지리적 특성 상 북한 노동자들의 출입을 공단 안에서 제한하기 쉽다는 이점이 있다.
그러나 임진강 바로 남쪽 편 우리지역에 공단을 세우면 북한 근로자들의 출퇴근과 관리도 어렵지 않고 투자와 운영에 있어서 지금보다 훨씬 더 원활한 공장가동 효과를 볼 수 있다. 지금은 UN 제재 대상인 개성공단 재개와 맞물려 불투명하지만 이미 북한의 사증이 필요 없이 입국이 가능한 나진선봉특구 등이 운영되고 있는 시점이어서 충분히 가능한 그림이다. 그리고 전통건축 인력 교육도 필수적이다. 이를 위한 거점으로 바로 인근의 개성공단만 한 곳은 없다. 이곳에 건축기술학교를 설립하여 한옥과 작년에 우리 민족의 무형문화재로 등록한 온돌문화를 연구하고 보급하면 남북 간 차이를 메워 역사적, 문화적, 산업적 남북통일을 앞당기는 마스터키로 활용할 수 있다.

세 번째는 압록강 하구에 위치한 위화도와 황금평도를 활용하는 방안이다. 이미 북한은 두 섬을 ‘북한의 홍콩’인 상업·무역 지구로 개발하려는 계획을 추진했다. 단둥호시무역구(丹東 互市貿易區)인 ‘호시’는 양쪽에서 번갈아 가며 장이 열린다는 의미로, 국경에서 행해지는 자유무역의 하나이다. 중국 단둥(丹東)의 경우 한반도와 국경이 닿아 있어 구한말까지 호시가 이뤄졌으나 일제 강점기 후 중단되었다가 2015년 10월 15일 100년 만에 재개됐다. 한국, 러시아도 점포 개설과 교역이 가능하기에 지금의 제재 국면에서도 충분히 활용할 만하다.

네 번째는 비교적 제재에서 자유로운 관광산업으로 삼지연 공항을 이용한 백두산 동파와 개마고원(蓋馬高原) 관광코스 개발이다. 단순 관광보다는 답사차원의 천혜의 자연을 보존하고 서로가 향유하는 방안으로, 삼지연 공항은 백두산 소재지인 북한 양강도 삼지연군에 있고, 중소형 항공기가 이착륙할 수 있는 활주로와 공항 청사, 유류 지원 시설 등이 있어 중국으로 유입되는 백두산관광을 북한쪽으로 돌릴 수 있다. 또 한반도의 지붕인 우리나라 최대의 고원(1만 4,300㎢)으로 서울 면적 24배, 남한 면적의 14%에 해당하고 평균높이는 1,340미터에 달해 캠핑족이 매우 좋아할 것 같은 풍경의 개마고원에 안전시설 등 최소한의 인공물을 조성한다면 상당한 이점이 생긴다. 우리나라 지붕인 해발 2000미터이상의 산들이 구릉처럼 보이는 곳이자 삼수三水와 갑산甲山이 있는 하늘을 나는 새조차 찾지 않는다는 고원의 환상적인 풍경을 고스란히 맛볼 수 있게 될 것이다. 

▲ 최근 위화도의 북한마을 풍경

◆ 우선 가능한 일부터 시작해야 
   한반도 통일, 독일 통일보다 쉽게 이루어 질 수 있어

독일의 통일은 동독 인민회의 결정에 따라 상호 합의에 의한 연방 편입방식으로 이뤄졌으며, 일부 부정적인 통일론자들이 언급한 일방적인 흡수 통일이 아니었다. ‘선 평화 후 통일’의 원칙하에 먼저 화해협력을 통한 교류 후 통일 단계로 진입하는 방식으로, 통일은 일종의 프로세스가 되어야 한다. 남북의 자유로운 ‘통상·통신·통행(3통)’이면 된다. 소통하지 않으면 불통이고 전쟁이다. 북한은 주체사상 체제와 군사 정권의 건재함 등으로, 독일과는 다르게 통일을 준비할 시간적 여유가 있으며, 북한 주민 95% 이상이 통일을 희망하고 있다. 개성공단은 98%가 재입주를 원하고 있다. 이제 남과 북은 평화협정을 통한 휴전선 후방 배치 화해시대를 통해 파주평화경제특구를 만들고 금강산과 백두산 개마고원 관광특구의 조성으로 화해공존 시대로 갈 수 있다

남북경협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풀려야 가능하다. 성공적인 남북경협은 ‘평화만큼 좋은 경제 추동력이 없다’고 했다. 남한의 30배가 넘는 북한 지하자원은 1경 원 이상 가치가 있다. 북한의 노동력, 남한의 자본과 기술이 만들어내는 시너지 등에 대해서 골드만 삭스의 통일 강국론이 있었고, 세계적 투자자인 짐 로저스는 “전쟁 위험이 없어진, 통일된 한반도의 북한 지역에 전 재산을 투자하겠다” 공언 했다. 통신, 통상, 통행 3통이 통일의 첩경이다. 중국과 대만(자유중국)은 철천지 원수지만 이 ‘3통’으로 돌파구를 열었다.

우리는 막연히 환상적이고 전면적이며 급진적인 통일은 경계해야 한다. 평화가 바로 통일의 디딤돌이기 때문에 평화를 담보하지 못하는 어떠한 통일도 거부해야 한다. 이념적 성향과 사회적 모순 및 복잡한 정치적 이해관계 등 분단 70년 동안 한국과 북한 사람들은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지게 되었으며, 상호 통일 이후에도 서로를 외국인처럼 생각할 수도 있다. 이제는 서로 닮을 점을 찾아가며 소통하는 신한반도 시대를 열어야 한다.

우리는 건축인으로서 또 민간차원에서 협상의 불씨를 살려야 한다. 일 년 전 그 어려운 때를 기억하자. 우리는 지금 북한의 주장이 관철되지 않거나 회담이 결렬되었을 때 험한 말을 쏟아내고 대화의 문을 닫았던 과거와는 다른 모습을 보고 있다.
건축은 그 시대의 문화를 대변하는 잣대로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한반도의 평화를 항구적으로 견인하기 위하여 한민족 문화를 공유하는 남북이 좀 더 긴밀하게 함께 연구를 지속하면 우리 민족의 주체성 있는 건축이 국제적 건축으로 지지를 받게 될 수 있음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백두산 관광, 개마고원 관광 등 남북 경협사업을 예외적으로 적용하여 제재를 허용하는 전략이 비핵화를 견인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남북관계는 정말 난해한 고차방정식이고 한치 앞이 안 보이는 안개정국이다. 안개가 걷히기를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 한 발짝, 한 발짝 앞으로 가서 안개 속으로 천천히 나아가야한다. 가면 보인다. 시계가 가까울 뿐 시계 ‘제로’는 아니다. 한국은 민주주의 체제가 안정된 나라로 민주주의나 시민사회가 심각하게 흔들리는 상황은 상상하기 어렵다. 남북관계가 꽃샘추위를 떨치고 모두가 환영하는 희망찬 새봄이 오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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