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이다.
춘소산책치천금(春宵散策値千金)이라. “봄날 밤의 가벼운 산책은 천금의 값어치가 있다”라는 뜻이다.
미세먼지로 힘들겠지만 마스크를 쓰더라도 한 번쯤 봄날 밤을 거닐어 보자. 이 따스한 봄은 생각만큼 길지가 않다. 대숲도 좋고 강변길도 좋다. 어느 책 구절에서는 숲속 길 산책은 자기 자신과의 만남이며, 석양 무렵의 강변길 산책은 마음을 풀어놓고 사물의 지혜를 깨치는 시간이며, 답답할 때는 강변을 걷고, 자기 자신을 들여다봐야 할 때는 숲길을 걸으라고 말한다. 참 의미 있는 말이다. 일상에서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늘 책상 앞에 앉아 도면 등과 씨름한다. 별 큰일도 아닌데 항상 바쁘며, 시간에 쫓겨 산다. TV 드라마에서 만큼은 여유롭고 멋진 우리의 모습이 나오지만, 실상은 그와는 정반대인 게 사실이다.
함께 한목소리도 제대로 내야하지만 그러하지 못하고 있다. 당연 우리 밥그릇을 놓고 서로 골몰하고, 건축구조 관련해서는 지진 트라우마로 불거진 규제강화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에 밀려 우리의 목소리가 공감을 얻지 못했다. 물론 건축사라고 다 똑같은 생각을 공유할 수야 없겠지만 우리가 누구인지 스스로 되돌아보고 생각할 때가 이제는 되지 않았을까? 대나무숲 강변을 거닐며 여러 생각에 잠기게 된다.
사무소를 운영하다보면 생존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때문에 일을 하나라도 더 수주해야 한다는 강박에 걸리게 마련이다. 누가 내 일을 가로채지나 않을까 하면서 앞만 보고 달리는 것은 아닌지. 요즘은 경기가 급전직하강하면서 일이 증발하다시피 했다. 이 또한 불안이다.
사무소를 경영하는 입장에선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다. 사람은 누워서 하는 생각과 앉아서 하는 생각이 다른데, 가장 균형 잡힌 생각은 걸으면서 하는 생각이란다. 희랍의 소요학파가 산책이 전공이 아니던가? 아리스토텔레스 학파를 다른 표현으로 소요학파라 부르며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자들과 숲속을 산책하면서 강의하고 논의하였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기존의 틀을 깨는 창의적 사고를 위해서는 휴식이 필요하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일상의 반복적 업무에서 모든 걸 멈추고 머리를 비워야 기존의 사고방식이 아닌 다른 관점에서 생각하고 성찰할 여유가 생긴다는 것이다. 미국의 면역학자 조너스 소크 박사는 수년간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하기 위해 연구실에서 살다시피 했다. 어딘가에서 막혀 실험에 진전이 없자 그는 기분전환을 위해 2주간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났다. 13세기에 지어진 성당에서 높은 천장을 바라보던 그에게 불현 듯 결정적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전 세계 수많은 아이들을 소아마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준 백신은 연구실이 아닌 옛 성당에서 탄생했다.
봄날의 산책은 하나의 생각에 몰입하여 묻고 답하는 자신만의 여유로운 사색의 시간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우리와 마주쳐 본 적이 언제였던가?”하면서 말이다.
봄날은 간다.
전국의 남녀노소 건축사님들!
이 눈부신 봄날, 새롭게 피어난 꽃과 잎을 보면서 무슨 생각들을 하시는지요? 각자 이 험난한 세월을 살아오면서 참고 견디면서 가꾸어온 그 씨앗을 이 봄날에 활짝 펼쳐보시기 바랍니다. 봄날은 갑니다. 덧없이 지나갑니다.
이 봄날의 꽃과 잎들의 침묵 속에서 한번쯤 머리를 비우고 생각을 정리해보시기 바랍니다. 법정 큰스님의 길상사 봄 정기법회 내용의 말씀처럼.
화창한 봄날 어느 저녁에 현실적인 문제를 내려놓고, 새로운 출발을 위한 큰 힘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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