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페스의 발자국
- 이명수


샛길은 늘 친숙하다
셀시우스 도서관 앞 한쪽으로 기운 길
대리석 조각에 발자국 하나 찍혀 있다
‘이 발보다 작은 사람은 들어오지 마세요’
내 발을 대어본다
꼭 맞는다

유곽遊廓이다
‘나를 따라오세요’
나는 또 샛길로 빠졌다

상처를 치유해준다는 ‘사랑의 집’
내 발에 꼭 맞는 여인의 발자국을 신고
2천 년을 걸었다

그리스 여인과 함께 에게해 해변에 앉아
에베소 보내는 편지*를 읽는다

샛길을 따라 들어온
2천 년 전의 지금
막 도착한 편지를 읽는다

*신약의 열째 권 에베소서.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보낸 옥중 서신

-『까뮈에게』중에서 / 이명수 시집 / 시로여는세상 / 2019년
터키 서부지역의 에게해 연안에 자리한 에페스는 바울이 3차 선교 여행 시 2년 간 머물렀던 곳이다. 그는 이곳에서 안수로써 성신을 부여하였고(행 19:1~7), 악귀를 내쫓는 등 많은 기적을 행하였다(행 19:8~21). 고대 로마의 유적이 즐비한 이곳에는 사람들에게 사창가를 광고하는 인류 최초의 광고 사인이 있다. 그게 바로 시에서 얘기하고 있는 발자국이다. 시인이 신은 2천 년 전의 발자국은 창녀의 것이었을까? 바울의 것이었을까?
 

저작권자 ©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