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는 어떻게 사회적 배타성을 심화시키나

▲ 김용준 건축연구원 책임연구원

한 인터넷 기사에 따르면 대전에는 두 아파트 단지를 가로지르는 철조망이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아파트 A는 일반분양아파트, 아파트 B는 임대아파트로 1,500가구 중 약 58% 정도가 취약계층과 새터민 등을 포함한 영구임대아파트 거주민이다. 철조망으로 인해 B아파트에서 초등학교 통학이나 대형마트를 가려면 먼 길을 돌아서 가야 됨에도 불구하고, 이 철조망은 두 아파트가 지어진 직후 설치되어 20년 이상 유지되고 있다.(남과 북도 아닌데…'철조망'으로 가로막힌 두 아파트, 김미성, 노컷뉴스)

철조망의 설치 이유에 대해서는 “아파트 단지 간 바닥 높이가 달라 통행할 때 위험할 수 있어서 철조망을 설치한 것”이라는 말도 있지만 인접한 다른 일반분양아파트 사이에는 철조망을 찾아볼 수 없다.

필자는 20년 전 대전 둔산 신도시에 이주해 거주한 경험이 있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새로 지어진 대규모 단지답게 모든 기반시설이 깨끗했고, 근린생활시설을 이용하기에 매우 편리하고 쾌적했다. 그곳에서의 생활은 대부분이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지만 모두 그렇지는 못하다. 당시 전학 가서 사귀게 된 친구 중 하나는 학교에서 유난히 놀림과 따돌림을 받았는데, 나중에 알게 된 놀림과 따돌림의 이유는 그 친구가 임대아파트에 살기 때문이었다. 그 아이는 자신이 어디에 사는지에 대해 숨길 수 있었다면 숨겨야 했을까? 그 아이가 받았을 상처는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지금 생각해보면 둔산 신도시는 하나의 거대한 배타적 조닝이 이루어져 게이티드 커뮤니티(gated community)를 형성한 것이다. 게이티드 커뮤니티의 장점은 범죄로부터의 안전, 구성원 간 경제적 수준에서의 동질감 등에 있다. 빈곤한 상태가 사람을 폭력적으로 만든다는 주장은 과학적인 검증이 없는 가설에 불과하지만 통계적으로는 유의미한 상관관계에 놓여있다. 게이티드 커뮤니티는 거주의 안전성과 쾌적성을 찾으려는 인간의 본성과 개인의 기호에 따른 것이므로 일부 주민의 배타적 행위는 비윤리적일 수는 있으나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취약계층에게 염가에 주택을 공급하는 정부의 옹호적 시도가 결국 사회구성원간의 배타성을 야기한 것이다. 그렇다고 임대아파트를 건설한 정부를 비난할 수 없는 것은 근본적인 원인이 사회구성원의 인식과 계층화·구획화 되기 쉬운 아파트의 물리적 특수성에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단독주택으로 구성된 동네는 특정 지역을 제외하고 다양한 소득계층이 뒤섞여 사회혼화를 이루었다. 동네의 골목골목은 누구나가 편하게 보행할 수 있었으며, 지번으로 이루어진 집 주소만으로는 그 집의 규모와 자가 여부 그리고 소득수준에 대해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아파트의 등장으로 대규모 단지개발이 가능해지면서 일반분양단지에 임대아파트가 섬처럼 개발되거나 역으로 다세대 다가구 밀집지역에 고급아파트단지가 섬처럼 생기는 것이 가능해졌고, 이로 인해 주민간의 위화감과 배타적 행위를 심화시켰다. 각 아파트 단지는 브랜드로 구분되고, 단지 내에서도 분양주택인지 임대주택인지, 중소형 평형인지 대형 평형인지, 심지어 화장실 개수까지 구분된다.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집까지 바로 이어지는 편리한 시스템은 주민간의 접촉 기회를 최소화하고 있으며, 본인이 살지 않는 동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비밀번호를 알아야 하고, 들어가서는 남의 사유지를 침범한 것 마냥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단지, 동, 라인, 각 호로 나누어지는 아파트는 겹겹이 싸인 보안장치처럼 서로를 가두고 있다. 이 아파트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주거유형이다.

우리나라 아파트 건설은 그동안 만성적인 주택난 해결, 주거환경 개선, 경기부양 등 다양한 이점들을 가져왔으나 한 시대의 성장 동력이 다음세대의 발전의 발목을 잡는다는 역사적 변증법처럼 현재 아파트는 사회적 배타성을 심화시켜 물질적 자본, 인적자본에 뒤이어 경제성장의 중요한 요소로 손꼽히는 사회적 자본의 활성화를 저해하고 있다. 아파트는 거주에 최적화 돼있을지언정 도시의 지속가능성에 유익하지는 않다.

사회적 혼화(Social Mix)에 대한 고민을 먼저 한 미국은 1992년 HOPE Ⅵ(Housing Opportunities for People Everywhere)프로그램을 시행했다. 본 프로그램은 1980년대 말 미국이 공공임대주택의 정책 실패를 인식하면서 추진하고 있는 정책이다. HOPE Ⅵ 프로그램은 노후침체된 빈곤밀집지인 공공임대주택을 소득계층 혼합형(incomemixed community)으로 재개발하고 기존 세입자에게는 주택 바우처(voucher)를 지급함으로써 인근의 저빈곤 지역으로 이주시킨다는 점에서 새로운 접근방식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은 바우처 사업에 2004년 까지 약 53,000호에 약 50억 달러(한화 5조)에 달하는 보조금을 지급했다.(뉴어바니즘을 통한 사회적 혼합, 얼마나 가능한가? 미국 Hope VI 프로그램의 사례를 중심으로, 2006, 진미윤, 대한주택공사 주택도시연구원) 하지만, 이러한 방식은 지원금을 통해 표면적인 계층 이동을 주도했을 뿐 실질적인 사회적 혼화를 이뤄내지는 못했다. 우리나라도 사회적 혼화를 위해 임대주택 의무비율을 지정, 소형주택의무비율, 주택 바우처 등 다양한 제도를 통해 노력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어 보인다.

우리나라의 삶의 만족도(life satisfaction)는 OECD 38개 나라 중에 30위로 하위권이며, 사람들 간에 유대감을 뜻하는 공동체(community)는 38위로 최하위다. 아파트 중심의 주택정책이 갖는 한계를 인지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어떠한 주택 유형이 지속가능한지를 살펴, 사회적 혼화를 이루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지속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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