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금의 우리 주위에는 언제인가부터 건축사를 부러워하거나 무서워하기는커녕 얕보고 무시당하는 처지에 있다.

경찰이 무섭다. 세무서가 무섭다. 변호사에겐 고맙다. 감정사도 고맙다. 건축사는??

건축사는 공사현장에서 조금이라도 잘못이 있으면, 건축주나 시공자 그리고 관에서 건축사에게 책임을 묻는다. 그런데 다른 관리자는 책임을 묻지 않는다. 도둑맞았다고 도둑 못 잡았다고 경찰이나 경찰상위기관에서 책임을 지우는지 궁금하다.

교통법규를 어겼으나 소소한 잘못인 경우나 고의가 아닌 경우 현장에서 훈방하는데 대하여 고맙게 생각한다. 교통경찰이 훈방으로 선처해 주었다고 해서 인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뭔가 현장에서 조금 잘못이 벌어지면 모두가 건축사들의 책임이다. 작은 실수를 묵살 해 주어도(훈방조치) 건축주나 시공자는 전연 고마움을 모른다. 오히려 건축사가 잘못 했는 양 화를 낸다. 건축사도 건축주나 시공자가 잘못이 있는 경우 확실하게 정리해서 다음에는 그러지 않는 조건으로 훈방(즉 봐주는)해주는 근성을 배워야한다.

그냥 쉬쉬하는 이상한 버릇이 건축사 주위를 감싸는 것 같다. 건축사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

건축사의 위치가 어떻게 되었나.

건축물 준공식에 설계한 건축사가 초대도 되지 않았고 준공기념식 한다고 어디서 듣고 가보니 자리도 안주어 멋 적게 돌아서야 하는 신세...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나는 현실로 변했는지 실로 안타까울 따름이다.

과거에 이런 경험이 있다. 오랜 옛적인지도 모른다. 기공식이나 준공식을 하는 데에 무대가 세워지고 자리가 배치되어있다. 그 때에는 건축주를 제외하고는 설계자(감리자)는 서열이 1위다. 시공자보다 기타 여타 관계자보다 말이다. 내빈 소개 시에도 설계자(감리자)를 제일 먼저 소개를 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시공자가 앞으로 가고 기타관계인 등 그 곳의 기관장등이 앞이다.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고 우린 어쩌란 말인가. 이러한 일들이 누구의 잘못인가. 중개사가 부르면 개처럼 찾아가고, 물론 일거리를 준다는데 안 갈 사람 있겠느냐마는 절차상의 행동거지가 문제다. 굳이 간다면 출장비라도 받든지 설계용역비에 추가를 하든지 해야 한다.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현실을 우리의 책임도 많다고 본다.

참여의식이라든지 반의반하면서 묵살 해버린 우리들의 책임. 발언을 해야 하는데도 무언가 캥키는 것이 있는지 나에게 화살이 돌아와도 피해버리는 현실. 잘못이 있을 때 떳떳하게 의견을 제시하고 상황과 견해를 주장 했더라면 지금도 대우를 받을 건데 귀찮아서 미안해서 말꼬리를 내리다 보니 어디에서나 뒤로 밀리는 신세가 되었다고 본다.

예를 들면 사고현장에서 상황분석을 위하여 자문을 구하려고 건축사가 인터뷰에 응한 적이 얼마나 있나. 그냥 피해버리니까. 어떤 문제가 생겼나 말이다.

건축과 관련한 사고가 나면 매스컴이나 관련기관에서 왜 교수들에게만 마이크를 데어주고 자문을 받는지 진정 건축사의 일인데 건축사에게는 한마디 의견도 묻지 않고 우리는 피의자의 신분으로 비판대에 올라야 하는지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다.

또한 필자가 속한 대구지역에서 설계용역비 정상화를 위한 노력을 해보지만 정말 어렵다. 전부가 자기 일을 놓칠까 정상적 용역비를 정하는 것이 아니고, 주는 대로 받는 것 같다. 개인 중소규모건축물 설계용역비가 천차만별이다. 물론 건축설계도서의 질도 천차만별일 것이다. 그러나 기본이 있지 않겠는가.

아울러 설계용역비 최저가입찰방법을 말려달라고 안달을 하는 자가 최저가 입찰에 참여를 하고 있다는 것이 우습다. 그래도 건의는 해보자며 설계발주기관에 건의를 하면 최저가로 입찰에 부쳐도 그래도 건축사가 참여한다니 할 말이 없다. 최저가 낙찰인데 누가 작은 금액에 투찰하라고 했느냐고 반문을 할 때 할 말이 없어진다.

내가 안가면 다른 사람이 하니 나도 최저가로 참가 한단다. 그러니 발주처는 당연히 예산절감차원에서 최저가로 발주 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시대가 많이 변했고 지금도 바뀌어 간다. 그리고 우리는 그 시대의 변화에 발 빠르게 변해 빨리 가든지 최소한 같이 변해는 가야한다. 좋은 시절에 나태해져 뒤쳐진 모습이다.

이제 모든 분야가 설계다. 그렇게 설계라는 용어를 부르짖어도 그에 상응하는 대처를 하지 못한 결과 온 분야가 설계로 통한다. 과거에는 설계라는 용어는 오직 건축설계에만 국한되어 사용한 것 같다. “하시는 일이 뭡니까? 설계합니다.” 이것으로 나의 자격과 직업을 상대가 알아주었다.

하지만 아직도 나를 파출소 소장으로 안다. 젊은 나이(2∼30년 전)에 소장이라니 주위에서는 출세를 빨리 했는 걸로 보였나 보다. 아직도 소장이라니 경찰청장을 해도 몇 번을 해야 하는데 말이다. 그렇게도 건축사님, 선생님으로 호칭하자고 그렇게도 부르짖었는데 말이다. 주장하는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OO건축사님 바꿔 달라니 누구라고 반문하고 아∼소장님 찿으시느냐고” 우리의 현실이 소장이 아닌 위대한자로 불러주기를 갈망하면서도 정작 내가 나서지 않는 데 어찌 대우를 받으려고 하는지.

올해는 토끼의 해 신묘년이다.

토끼는 거짓말을 하고 요령을 피우는 쪽으로 알고 있다 하나의 우화 때문에 말이다. 그러나 우리 조상들은 토끼가 주는 순결함과 평화로움 때문에 일찍이 토끼를 이상향에 사는 동물로 만들어 놓았다. 옛 사람들은 달을 늘 이상향으로 그렸고, 그 이상향에는 계수나무와 함께 토끼가 방아를 찧고 있다고 했다. 토끼는 성장과 풍요를 상징한단다. 토끼는 깨끗하고 귀여운 이미지로 보인단다.

신묘년 새해에는 우리 모두 진실과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그런 한해가 되어 다시금 우리의 위상이 우뚝 설수 있는 초석을 다지는 한해가 되었으면 한다.

 

*본 내용 중 지칭한 여러 관계인은 의미 부여가 없음을 이해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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