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휘의 건축생각

‘노스텔지어’를 넘어 ‘상상력’에 더 많은 투자를 해서
‘미래자산’을 획득할 기회를 갖게 될 때,
우리도 건축의 문화적 ‘패권전쟁’에 참여하는 플레이어가 될 것이다.

▲ 노휘 논설위원(디디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대표, 서울시 공공건축가)

80년대 말 미국 콜롬비아 대학은 당시 해체주의 건축을 대표하는 프랑스인 베르나드 츄미를 건축대학 학장으로 임명했다. 당시 동부의 아이비리그는 멀리 보자면 에꼴드보자르식 교육의 뿌리를 바탕으로 발전한 토대 위에 모더니즘을 받아들인 학풍이 주를 이루고 있던 때였다. 츄미의 커리큘럼이 도입되면서, 유럽에서도 소수이고 비주류였던 해체주의 혹은 실험적 건축이 미대륙의 주류 사회를 대표하는 학교를 통해서 주목 받는 현상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점차적으로 유럽의 해체주의 작가들이 미국 동부와 서부의 주요건축대학에서 활동을 활발하게 하게 되면서 가장 최신의 실험적 건축을 미국건축으로서가 아닌 새로운 시대정신을 가지고 도전하는 건축으로 크게 주목 받게 되었다. 현재는 이런 실험적 건축은 미국 동부와 서부의 거의 대부분 대학에서 일반화되었으며 ‘MIT미디어랩’처럼 더욱 진화된 모습의 ‘실험적 건축’연구까지 진행하고 있다. 미국의 건축대학들은 유럽의 모더니즘 대가들이 세계 2차 대전의 흐름 속에 대거 망명해야 했던 시절에 큰 변화를 받아들였던 경험이 있다. 하지만 80년대 당시 실험적 건축이 관심은 받았지만 모더니즘처럼 거대한 흐름을 주도하던 것은 아닌 시기에, 외국인인 프랑스인을 건축대학 학장으로 스스로 영입하고 주변 대학들의 건축교육 학풍까지 변화를 일으킨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상상력을 현실화 해왔던 인류의 경험 및 산업의 패권경쟁이라는 측면으로 비교해보려 한다.

르네상스시대 이탈리아인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잠수함을 상상했다. 1869년 프랑스 소설가 쥘베른은 소설 ‘해저2만리’에서 ‘노틸러스’의 항해기를 그렸다. 마침내 1954년 미국해군은 원자력 함수함 ‘노틸러스호’를 실제로 진수시켰다.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은 기술의 발전의 결과물이라기보다는 한 손으로 모든 것이 가능해야 한다는 스마트폰 개념을 먼저 정립하고 개발자들에게 요구한 결과물이다. 상업용 전기차를 범용화 시킨 엘론 머스크의 ‘테슬라’ 또한 기술이 성숙해서 성공한 것이 아니라, 전기차 판매 및 충전 생태계를 함께 구축한 상상력의 결과이다. 위에 언급한 것들 이외에도 누군가 상상했던 것을 연구하고 개발하여 실제로 만들어진 역공학(reverse engineering)의 산물들은 인류역사에 항상 등장한다.

마찬가지로 건축 안에서도 이러한 상상력의 역할을 하는 것이 페이퍼 아키텍처(paper architecture) 혹은 ‘실험적 건축’이라고 할 수 있다. 자하 하디드나 프랭크 게리 등은 매우 오랫동안 페이퍼 아키텍트로서 현재가 아닌 미래의 시점에서 건축 작업을 진행해왔다. 프랭크 게리 사무소는 지금과 같이 디지털 툴을 도입하기 이전이나 지금이나 같은 개념과 방법론으로 작업을 진행한다. LA의 월트 디즈니 홀이 당선되었지만 당시의 기술로는 디자인을 실시설계로 변환할 방법이 없었다. 이 때문에 프랑스 다쏘가 당시에 개발한 케티아 프로그램을 거의 최초로 사용하는 테스트 베드가 되기를 자청했다. 게리사무실의 디지털 툴은 여전히 그의 상상력을 실현시켜주는 역공학의 장치이다. 디지털을 좀 더 디자인 영역까지 폭넓게 사용하는 자하 하디드 사무실도 게리사무실 출신의 경력자들을 고용해서 경험을 이식 받아야 했을 정도로 선구자들은 희박했다. 자하 하디드나 프랭크 게리는 가용한 최신 기술내에서만 설계를 한정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상상이 이루어질 때까지 오랫동안 페이퍼 아키텍트로서 비전을 선보여 왔으며, 기술이 그들의 건축을 실현시키도록 자극하여 결국 개발하게 만든 역공학의 주역들이다.

▲ 월트디즈니 콘서트홀

역사를 통해서 보면 인간은 끊임없이 상상력을 발휘하여 새로운 시각과 개념을 만들어 내었고 후세들은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서 노력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열어왔다. 콜롬비아대학이 베르나드 츄미를 영입한 것은 상상력에 대한 투자였다. 실험에 대한 투자는 벤처 산업과 같다. 결과는 알 수 없지만 가능성을 최대한 열어 두고 많은 시도를 장려하고 지원한다. 확률은 낮지만 그 동안 보지 못했던 전혀 다른 새로운 제품이나 시장을 창출해 낸다. 소위 선진국의 건축교육은 실험적 건축에 대한 비중이 매우 높다. 실험을 통해 추구하는 건축교육의 목적은 현재를 넘어 아직은 모르지만 미래에 추구되어야 할 가치를 찾아내는 데 있다. 당장 쓰일 것 같지도 않아 보이는 것을 지속적으로 교육하고 있는 것은 막역한 투자가 아닌 새롭게 구현되어야 할 미래에 대한 확실한 투자인 것이다. 미디어랩이 탄생한 배경이며 자하 하디드와 프랭크 게리가 실험적 건축을 지속해온 이유이다. 그들은 모르는 것을 찾기 위해서 실험을 계속하며 건축의 지평을 넓히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단순히 몇몇 스타 아키텍트의 영웅적 태도라고 일축해서는 안되며, 인간의 역사는 이와 같은 선구자들의 모험을 통해 새로운 세계가 열려왔다.

현재 한국의 건축교육은 현재에 머물러 있다고 보인다. 선배들의 교훈을 전수하는 것은 직업학교에 지나지 않는다. 디지털 툴을 조금 더 가르치고 로봇을 활용한 스튜디오가 몇 군데서 생기고 있고 3D 프린터를 구입하는 학교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 한국 건축교육이 미래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는 것인가? 창의적인 상상력이 없는 기술력은 재주에 불과하다. 디지털을 바탕으로 이해 못할 결과물을 만든다고 상상력이 발휘되는 것은 아니다. ‘이탈리아’인이 개념을 제시하고 ‘프랑스’인이 소설로 써서 자극하고 결국 ‘미국인’이 실현시킨 잠수함처럼 인간이 오랫동안 추구해야 할 만한 ‘상상’을 내놓는 것이 더 중요하며 이것이 건축교육을 하는 궁극적 목적이 될 때 ‘동력’을 갖게 된다. 최근 도시재생이라는 것이 큰 화두가 되어 별로 역사가 길지도 않은 근대건축물과 구도심에 많은 관심과 노력이 정책적으로 집중화 되고 있다. 과거의 콘텐트를 통한 노스텔지어에 머무를 때 우리에게 미래는 없고 재탕에 머무르는 테마파크만 있을 뿐이다. 한국건축의 목표가 관광산업의 아이템을 만드는데 머물려야 하는가? 미국이 그들의 건축교육 안방을 개방하고 외국건축가들을 영입하는 것은 단순한 문화적 수입이 아니다. 할리우드가 전세계에서 우수한 시나리오를 사들이고 외국감독을 데려와서 재수출하면서 문화전쟁에서 패권을 잡는 것과 같다. 실험적 건축교육은 기업의 연구개발비와 같은 항목이며 건축에서는 상상력에 대한 투자이다. 미국은 80년대 유럽에 비해 뒤떨어진 ‘개념건축’의 수준을 직시하였으며 ‘자력갱생’보다는 유럽건축가를 대량으로 투입하여 교육에 대한 ‘구조조정’을 단행한 것이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기술력’이나 국가중심주의에 머무르는 ‘노스텔지어’를 넘어서 ‘상상력’에 더 많은 투자를 해서 ‘미래자산’을 획득할 기회를 갖게 될 때, 우리도 건축의 문화적 ‘패권전쟁’에 참여하는 플레이어가 될 것이다. 미래는 결국 창의력을 가질 때 열린다.
 

노휘 논설위원은... 2000년대 초반까지 미국에서 유학 및 실무를 하는 동안 미국건축의 전환기를 목격했다. 정림건축에서 디자인연구팀 NUDL을 운영하고 결과물을 담디출판사의 DD시리즈 37편 ‘make the imagination real’로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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