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잎이라는 짐승
- 류경무

한 아이가 긴 하픔을 하며 돋아난다
솟구친다 사자처럼,
쫓기는 가젤처럼 솟아오르는
새잎이라는 짐승

너무 푸르러서 슬플 때도 있었지 아마?
새잎의 새로운 빛은 저렇게 빛난다
모든 목숨이 그러하듯
새잎아, 라고 불러주면 깔깔 웃던
한 덩어리 초록
제가 제 모가지 툭 자르고 싶은 새잎들은
내심 이쯤에서 그만 멈췄으면, 아니라면
이렇게 돋아나는 것만이
최선일까 생각하겠지만
과연 옛날에도 이런 적 있었나

이 맨발의 유릿조각
이 맨살의 먼지 쪼가리들
입술 꾹 다물고 걸어가는 비 그친 날 밤

오늘은 낮술이 내지르는 호통도
그저 견딜 만하다우
낙엽이 지면 돌아오겠다는 약속은
제발 때려치워요,
저기 잔뜩 짱그린 얼굴로
날 내려다보는 저 남자는 앞으로 뭘 먹고 살아야 할지 대답해줘요

이제 그만하자
오늘은 너희들 푸른 모가지 툭툭 끊으며 걸어가는 봄날이잖니

여기 한 아이가 긴 하품을 하며 돋아난다
새잎의 짐승들이 마구 솟구쳐오른다

-『양이나 말처럼』중에서 / 류경무 시집 / 문학동네 / 2015년
돋아나는 새잎이 사자와 사자에게 쫓기는 가젤과 유릿조각 같은 광물질로도, 하품하는 짐승들로도 둔갑한다. 식물-동물-광물의 변신을 통해 아픔과 계절의 변화를 무색하게 만드는 생활의 무게를 새잎이라는 저울에 고스란히 달아서 재본다. 봄의 생동하는 식물성의 축제가 육질과 포효로 변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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