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화, 어두운 마음의 깊이
- 이응준

낙타가 바라보는 사막의 신기루 같은 화요일.
슬픈 내 마음 저기 있네, 햇살과
햇살 그 사이에 막연히.

목화, 내 여인. 나의 이별, 목화.

아름다왔던 사랑도 아름다운 추억 앞에서는 구태의연하구나.
절망과 내가 이견이 없어서 외로웠던 시절은 다 어디로 가서
나는 왜 아직 여기 홀로 서 있나, 막연히.

청춘은 폭풍의 눈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등불이었지만
재가 되어 사그라지는 내 영혼에
상처로 새겨진 문양이여.

목화, 눈을 감고 있어도
도저히 보고 있지 않을 수 없는 목화.
어쩌면 혐오와 환멸은 인생이
자유로 가는 문이어서
계절이 흐르는 이곳에서는 절
망의 규정마저도 바뀌는구나.

낙타가 쓰러져 죽어 있는
사막의 신기루 같은 화요일에
마지막으로 기도하듯
맨 처음 그리운 나의 주님,

목화.

-「목화, 어두운 마음의 깊이」 이응준 시집 / 민음사 / 2018년
누구든 제 마음속 깊이 부르는 이름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그게 어머니든, 추억이든, 신이든, 자연이든 그 이름은 한 인간을 인간의 한계 속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한다. 그 이름은 “눈을 감고 있어도 도저히 보고 있지 않을 수 없는” 귀를 막아도 들리고, 눈을 가려도 보이는 그런 이름이다. 일찍이 윤동주가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라고 불렀던 이름이다. 그리고 우리는 또 하나의 이름을 얻었다. 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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