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은 재난에서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설계된 것이고, 건물이 무너진다 해도 사람들이 피할 시간 동안은 버틸 수 있게 설계된다. 지진이나 화재가 나서 건물이 무너지기 전에 사람들이 무사히 빠져나왔으면 건물은 그 역할을 다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사고가 수습되고 건물이 무사해서 안전하게 계속 살 수 있으면 좋은데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구조안전점검을 하여 부족한 부분을 보강하고 고쳐서 사용한다. 건물에서 사고가 나면 보다 안전한 건축기준을 마련하기 위해서 관련 법과 규정들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바뀐다. 경주와 포항에서 지진이 발생한 후에 필로티 건축물에 대한 안전기준이 보완되고 구조 감리가 강화됐다.
건물을 사용하는 유지관리단계에서 사용자와 관리자들의 잘못으로 피난통로가 막혀있어서 사상자가 많이 발생한 화재사고가 많았다. 사고 이후에는 사람들이 피난을 위한 통로나 계단을 잘 관리하고 있는지 점검하고 사고 예방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중대형 건축물을 점검하는 과정에서 놀랍게도 피난계단을 창고로 쓰고, 계단으로 통하는 문을 책상으로 막아서 사무실로 사용하고, 특별피난계단 전실에 자판기와 음수대를 설치해 놓고, 복도에 물건을 쌓아 놓는 경우를 보았다. 관리부서 직원들은 건축물의 피난에 관한 규정들을 잘 모른다고 했다. 건축물을 설계할 때 피난거리까지 고려해서 계단을 설계했다는 것을 모르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과 관리자가 모르면 예방하지 못하는 사고가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대형건축물 관리에서도 건축실무자들을 찾아보기 힘든데 많은 소형건축물들은 누가 관리하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최근 소규모 노후 건축물점검 과정에서 건축물대장에 위반건축물들이 있었다. 위반건축물에는 이행강제금을 내는데 건물주는 수익이 더 커서 위반상태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법을 위반한 것인데 그것은 그만큼 건축물이 안전하지 않은 상태라는 것이기도 하다. 안전은 재해로부터 사람들을 지키기 위한 건축의 시작이었는데, 건축물이 벌어주는 돈이 사람들의 안전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일까? 건축법은 최소 기준인데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건물주에게 건물을 안전하게 관리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건물을 유지 관리하는 것은 그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는 중요한 일이다.
건축물을 안전하게 관리하지 않아서 일어나는 사고가 반복되지 않도록 전문가들의 적극적인 관여가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 소규모 건축물의 사용승인 후 위반건축물로 변경하는 것을 막고, 건축물을 안전하게 유지하고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해 보인다. 건물에서 사고가 나면 누군가를 비난하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면 좋을 텐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설명할 기회도 주지 않고 건축실무자들을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경우에는 억울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분야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건물에서 사람들이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지키는 것이 건축실무자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닐까?
건축물의 수명이 길어지면서 건축물에서 사고가 많아지고 원인은 복잡하게 얽혀있다. 건축물의 규모가 크고 용도가 복잡한 건축물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그것은 사고가 발생하면 피해 규모도 더 복잡하고 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초대형과 초고층 건물들은 방재센터를 설치하고 다양한 시뮬레이션을 통해서 검증한 재난방지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소규모와 중대형건물의 유지관리에도 건축실무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건물에서 일어나는 사고를 예방해야할 것 같다. 건축실무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합리적이고 안전하게 건축물을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가길 희망한다. 특히 건축사들은 건물의 유지관리 과정에서 사람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그것은 다른 어떤 분야 전문가들도 대신하기 어려운 건축사의 전문영역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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