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악과 함께 하는 상량정
낙선재의 화계 계단을 오르자 달빛속의 음악소리가 들린다. 대금소리이다.
상량정 위에 앉아 대금을 부는 달빛에 비친 악사의 모습과 고궁에서 듣는 전통 악기인 대금 소리가 가을밤을 즐겁게 한다. 상량정은 1908년 융희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동궐도형에는 평원루로 표현되어 있으나 현재는 상량정으로 현판이 돼 있다. 상량정을 나오면 담장이 화려하고 원형의 출입문이 독특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 부용지
상량정을 나오면 잠시 소리를 멈춘다.
해설사도 설명을 하지 않고, 고궁의 돌담길을 잠시 걷게 유도한다. 돌담길을 옅은 조명과 청사초롱으로 이어가며 걷다보면 가을 향을 내뿜는 나무들도 아름다워 보인다.
잠시 걷다가 또 다시 소리가 들린다. 부용정의 연못과 건물에서 나오는 조명이 나타나면서 화려한 밤의 부용지를 보게 된다.

부용지는 창덕궁 후원에 있는 사각형의 연못이다. 연못 가운데는 지름 9미터의 원형섬이 조성되어 있으며, 물은 지하에서 솟아나온다. 비가 올 때는 서쪽계곡의 물이 용두의 입을 통해서 들어오게 된다.
예전에는 비원이라고 불렸다. 비원은 구한말 궁 내부 관제에 후원을 관리하는 관청을 비원이라 하였던 것인데, 현재는 후원으로 부르고 있다. 후원에는 부용지, 애련지, 관람지, 옥류천의 4개의 물이 있는 공간으로 구분되고 있다.
조선 태종 때 창덕궁 창건당시 조성되었으며, 임진왜란 때 대부분 소실되었다가 1623년 인조 때 개·보수 또는 증축되어 현재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부용지 뒤편의 주합루의 문은 어수문이라 한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는 의미로, 왕은 항상 백성을 생각해야 한다는 정조의 민본철학사상을 엿볼 수 있다.
영화당에서 들리는 음악소리에 부용지 인근의 모습들이 달빛에 비춰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좀 더 앉아서 밤의 정취를 느끼고 싶지만 다음 조에 밀려 이동해야 했다. 영화당 동쪽은 넓은 광장이 있다. 이곳은 왕과 왕비의 휴식공간으로 활용됐고, 왕이 입회하여 별시를 보았던 특별과거시험인 ‘춘장대시’를 치르던 곳으로 알려진다. 춘향전의 이몽룡이 이곳에서 과거시험을 보아 장원급제 하였다 한다.

○ 연경당과 애련정
부용지를 뒤로하고 또 다른 연못이 보이는 위치로 이동한다. 연못을 바라보는 모습 또한 아름답지만 돌로 새겨진 이정표를 끼고 문을 들어선다. 불로문이 보인다. 하나의 판석을 ‘ㄷ’ 자 모양으로 다듬어서 새긴 이름으로 왕의 장수를 기원하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이곳에는 금마문이 있다. 효명세자(죽어 익종으로  추존됨)가 독서를 위해 지은 의두합으로 들어가는 문으로서 중국 한나라 시대의 미앙궁에 있던 문을 참고하여 지었다 한다. 이곳은 효명세자의 효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전해 내려오는 지역으로서 그 설명을 들으면서 본다면 더욱 의미 깊은 곳임을 알 수 있다. 애련은 “연꽃을 사랑하는 이유는 더러운 곳에 처하여도 맑고 깨끗한 군자의 덕을 지녔기 때문이다”라는 송나라 주돈의 ‘애련설’에서 유래되었다고 하여 애련지이며 정자는 애련정이다.

애련정을 지나 연경당에 도착한다. 연경당에서는 마지막 달빛기행의 피날레를 장식한다. 연경당을 바라보면서 앉을 수 있는 공간에서는 담요와 따스한 국화차를 내주며 공연을 보도록 한다. 부채춤을 시작으로 구성지게 읊어대는 심청가를 통해 효명세자가 효심이 가득했던 모습이 후원 곳곳에 담겨져 있음을 느껴본다. 심청가와 또 한 번의 춤사위 이어지며 마지막 달빛기행의 프로그램은 한옥의 문을 통해 비춰지는 그윽한 조명 속 그림자놀이 공연으로 막을 내린다.
두 시간 넘게 해설을 들으며 창덕궁의 달빛기행을 마무리하며 후원 숲길을 따라 돈화문으로 산책하면서 나오는 기분이 가을밤 도심 속의 또 다른 추억거리가 되는 것 같다.

경복궁의 별빛야행을 몇 해 전 다녀왔을 때보다도 달빛 기행을 따라 보여지는 창덕궁의 매력이 더 아름다웠던 것 같다. 가을이 되면 창덕궁 달빛기행은 예매가 어려워서 더욱 간절함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덕수궁의 달빛 산책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참여가 가능하다니 서울의 고궁의 새로운 모습을 달빛과 별빛과 청사초롱만으로 느껴보는 의미 있는 여행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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